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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횡단이 순진? 여권 운동때도 같은 말 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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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누가 뭐라든,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는 5월 24일 비무장지대(DMZ)를 북에서 남으로 걸어서 횡단하겠다.”

팔순이 넘은 세계 여성운동계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81·사진)은 단호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플라자에서 ‘위민 크로스 DMZ(Women Cross DMZ)’ 기자회견을 한 뒤 본지와 단독으로 만나 “행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행사의 공동기획자 중 한 명인 정현경 미국 유니언신학대 교수도 조각보와 색동 천으로 만든 목도리를 보여주며 “조화와 평화의 상징인 색동 목도리를 목에 걸고, 남북이 하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각보를 들고 DMZ를 걸어서 건널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이넘은 세계 페미니즘 역사의 산 증인이다. 미혼과 기혼을 가리지 않는 영어 호칭인 ‘미즈(Ms)’를 만들어 전세계로 전파한 주인공이다. 그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한 몫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행사를 지원하는 인사들의 명단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인도의 영웅 간디의 손자인 아룬 간디 등이 이름을 올렸다.

 스타이넘은 왜 남북 문제에 관심을 뒀을까. 그는 “지난번 방한해 DMZ를 방문했을 때, 미국의 남북전쟁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서로의 생명을 앗아간 남북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없다. 한반도 역시 6·25를 극복해야 진정한 의미의 평화와 번영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이넘은 “우리더러 순진하다는 지적들을 한다”며 “우리가 처음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행진을 시작했을 때도 똑같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해냈다”고 강조했다. 행사 실무자인 크리스틴 안은 이달 초 북한 측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DMZ를 관할하는 유엔사는 “남북 정부가 승인한다는 전제 하”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통일부는 지금까지 임병철 대변인을 통해 “행사의 취지는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전례를 감안해 필요한 협조를 하겠다”고만 했다. 스타이넘은 한국 정부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부인하며 통일부 사회교류협력과가 그에게 보낸 편지를 꺼내 읽었다. 그러곤 “통일부 역시 우리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뉴욕=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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