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며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총리 관저 옥상에 소형 무인기(드론)를 떨어뜨린 남성이 원전 테러 사건을 다룬 인기 서스펜스 소설 『천공의 벌(天空の蜂)』을 모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경시청은 26일 용의자 야마모토 야스오(山本泰雄·40·무직)가 ‘관저 산타’로 이름 붙인 자신의 블로그에서 일본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서적들과 함께 이 소설을 ‘참고서’로 언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야마모토는 이날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경시청은 그의 집을 압수 수색했다.
일본의 인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가 1995년에 발표한 『천공의 벌』은 대형 헬리콥터가 후쿠이(福井)현 고속증식로 상공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테러리스트는 대량의 폭발물을 실은 헬리콥터를 원격 조종한다.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을 모두 사용 불능 상태로 만들지 않으면 헬리콥터를 폭발물과 함께 원전 위에 떨어뜨리겠다고 협박한다. 일본에선 올 가을 개봉을 목표로 영화 ‘천공의 벌’이 제작되고 있다. 영어 드론(drone)은 ‘수컷 벌’이라는 의미다. 경시청은 야마모토가 드론에 발연(發煙)통을 부착한 것도 소설 속 헬리콥터에 탑재된 폭발물을 모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야마모토는 지난해 가을부터 드론을 총리 관저에 침투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28일 블로그에 ‘(후쿠시마에) 오염된 흙이 든 검은 봉지가 수북하다. 비닐 가방에 나눠서 흙을 채워 간다’ ‘(도쿄에서) 걸어서 관저 주변을 정찰’이란 글을 올렸다. 또 12월 5일에는 ‘야간 이륙 시 눈에 띄지 않게 드론에 검은 칠을 했다’ ‘원전 반대를 어필하려면 오염 토양?’ ‘최악의 경우, 관저 부지 내에 추락해도 OK’라고 적었다.
그는 중의원 총선이 끝나고 내각 개편이 이뤄진 지난해 12월 24일을 첫 D데이로 잡았다. 그날 밤 총리 관저 부근에서 드론을 날리려다 고장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지난 9일 오전 3시30분쯤 관저에서 약 200m 떨어진 아카사카(赤坂) 주차장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실은 드론을 띄웠다. 경시청 관계자는 드론 배터리에 ‘원전 재가동 반대’란 성명문이 붙어있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