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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일병 허인회, 골프대회 우승 신고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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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동부화재 프로미오픈 우승컵을 들고 거수경례하는 육군 일병 골퍼 허인회. [사진 KPGA]

“우승 했습니다. 충성!”

 육군 일병 허인회(28)가 26일 경기도 포천 대유 몽베르 골프장에서 벌어진 KPGA(한국프로골프) 코리안 투어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4언더파 68타, 최종합계 7언더파였다.

 아무도 예상 못한 군인의 우승이었다. 상무 골프팀은 올 10월 경북 문경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체육대회를 대비해 지난 2월 창단했다. 민간인인 다른 프로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할 때 체력훈련만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창단 후 첫 대회 1라운드 상무 선수 6명의 평균 스코어는 76.5타였다. 허인회도 첫날 3오버파 75타를 쳤다.

 김무영 상무 골프팀 감독은 “5언더파를 치고 오라고 명령해도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되는 스포츠가 골프란 것 정도는 안다”면서도 “군대에서 이긴 자와 진 자가 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컷 탈락한 선수 3명은 몽베르 골프장 인근 숙소에서 경기장까지 구보로 이동해야 했다. 선수들은 바짝 긴장했다. 3라운드에서 허인회는 명령대로 5언더파를 치고 왔다.

 그래도 우승까지는 너무 멀어보였다. 그런데 선두 조에서 불쇼가 일어났다. 2위 박준섭(23·JDX)에 4타, 허인회와는 7타 차 선두로 출발한 박효원(28·박승철헤어스투디오)은 9번홀에서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하는 등 전반 4타를 잃고 추락했다. 2차 불쇼는 이상희(23·캘러웨이)가 했다. 흠잡을 데 없는 경기를 펼치며 3타 차 선두를 달리던 이상희는 13번 홀에서 안전하게 우드로 티샷한 볼이 OB가 되면서 트리플 보기를 했다.

 이후 혼전이었다. KO된 것 같았던 박효원이 살아났다. 허인회가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박효원과 연장전에 돌입했고 두 번째 연장에서 파를 잡아 승리했다. 7타를 뒤집는 드라마틱한 역전 우승이었다. 허인회는 “연장전에서 세컨드샷이 이리저리 흔들린 것처럼 샷감은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체력과 정신력은 사회에 있을 때보다 훨씬 강하다. 그 힘으로 우승했다”고 말했다. 허인회는 민간인으로 3승, 군인으로 첫 승을 했다. 국내 골프 초창기인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미군이 5차례 프로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허인회는 우승했지만 허일병은 상금을 받지 못한다. 군인은 영리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인 선수들은 아마추어 참가자처럼 상금과 관련해서는 없는 선수로 치고 다음 순위자가 상금을 받는다. 2위 박효원이 우승 상금 8000만원을 넘겨받았지만 상금보다 의미 있는 첫 우승컵은 받지 못했다. 그는 ‘박승철 헤어스투디오’ 창립자인 박승철씨의 아들이다. 아버지 회사와 계약해 아버지 이름을 모자에 붙이고 다닌다.

 지난해 해피니스건설 오픈에서 우승한 김우현(24·군입대)은 아버지 회사인 바이네르 모자를 쓰고 우승했다. 구두 장인인 아버지 김원길씨는 이에 감격해 바이네르 오픈이라는 대회를 만들었고 올해는 골프팀도 창단했다. 박효원은 김우현에 이어 아버지의 이름을 드높일 기회를 잡았지만 놓쳤다.

 허인회를 포함해 상무 선수들은 시상식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차량에 탑승했다. 다음날 새벽 5시 경남 함안에서 열리는 2부투어에 출전한다. 경기라기보다는 훈련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 전원에게 휴가를 줄 것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포천=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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