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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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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배우는 가치가 오로지 속도와 효율이란 사실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던지는 암울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 시급은 5580원. 이런 ‘씨급’. 쬐끔 올랐어요, 쬐끔. (370원 올랐대요) 이마저도 안 주면 히잉~.” 알바천국과 함께 양대 구인·구직 사이트인 알바몬의 TV 광고에서 걸스데이의 혜리는 열악한 최저임금 수준을 고발하며 “알바가 갑이다”고 외친다. 2016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이 6월 말로 다가온 가운데 수백만 알바 노동자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구교현(37) 알바노조 위원장을 9일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혜리의 광고가 알바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보나.

 “법정 최저임금을 가장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데는 사실 고용노동부다. 고용노동부가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홍보 동영상은 약 2000명이 본 데 비해 혜리의 유튜브 동영상은 64만 명이 봤다는 말도 있다. 최저임금이 시급으로 얼마고, 알바 노동자들이 그 임금 수준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

 -알바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나.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시간제 근로자가 200만 명 정도 된다. 그중 숙박업과 요식업 종사자가 약 110만 명이다. 통계에 안 잡히는 알바 근로자까지 다 합하면 3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방학 때 집중적으로 알바를 하는 학생들까지 따지면 최대 500만 명에 이를 거라는 분석도 있다.”

 -알바도 엄연한 일자리 형태의 하나라는 입장인데.

 “물론이다. 과거의 알바는 주업이 있는 상태에서 용돈을 벌기 위해 하는 부업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알바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생계형 알바가 크게 늘고 있다. 알바노조 조합원들 중에도 40~50대가 점점 늘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알바는 하나의 보편적 노동 형태가 됐다. 마땅히 정상적인 일자리로 인정하고, 그에 맞춰 근로 조건도 개선해야 한다.”

 -알바가 느는 사회·경제적 배경은 뭐라고 보나.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서비스 직종의 일자리, 그중에서도 특히 대인(對人) 서비스 중심의 일자리가 발달하고 있다. 전에는 햄버거를 사려면 가게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배달도 해준다. 사람들이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개발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주로 그쪽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런 일자리들을 알바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알바노조의 설립 취지는?

 “개인적으로 10년 가까이 알바를 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받는 수입으로는 부족해서 ‘투잡’ 개념으로 알바를 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보니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나도 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 시급이 얼마고, 하루 몇 시간 일을 하고, 업무 내용은 뭐고, 휴일은 언제고 하는 것들에 대해 약정이 안 된 채로 일을 했다.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았을 뿐 근로 조건에 대해 가타부타 따질 근거가 없었다. 이런 일을 겪으며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운동이 절실하다고 느껴 노조를 결성하게 됐다.”

 -노동법에 규정된 알바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가 알바 노동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4대 보험, 법정수당, 주휴수당, 야근수당, 연차수당 등에서 일반 노동자와 차이가 없다. 1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고,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도 똑같다.”

 -알바 노동자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꼭 챙겨야 할 사항은?

 “근로계약서를 쓰면 제일 좋다. 하지만 꺼리는 사용자가 많기 때문에 구두로라도 최대한 구체적으로 묻고 대답을 들어야 한다. 필요하면 녹취도 해야 한다.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를 캡처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첫 월급을 받으면 자기 급여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 묻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부당노동 행위를 당했을 때 구제받는 방법이나 절차는?

 “가까운 고용노동청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한다. 요즘엔 온라인으로도 피해 신고를 받는다. 알바노조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 카페에 사연을 남기면 댓글로 안내를 해준다.”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통계청이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시하는 34세 이하 단신 근로자 평균 생계비를 시급으로 따지면 8000원 정도 된다. 노동계에서 조사한 29세 이하 단신 근로자 표준 생계비를 시급으로 환산해도 1만원이 넘는다. 국제적으로 볼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최저임금은 1만원에 육박한다. 세계 15위인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추어 최저임금 1만원은 상식적인 수준이란 게 우리의 시각이다.”

 -거의 100%를 올리자는 얘긴데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최저임금은 우리 경제, 사회 전반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제임에도 고용노동부 소관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겨져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접근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담아야 한다.”

 -너무 거창한 얘기 같다.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특히 알바 노동자들은 시급이 낮기 때문에 장시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대학생 경우 알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학점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노동 시간이 긴 나라일수록 투표율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민주주의도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알바 일을 하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시급이 너무 낮기 때문에 그런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을 올려도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 수입은 똑같은 것 아닌가.

 “삶의 질에 큰 차이가 있다. 10시간 일해서 5만원 벌다가 5시간 일해서 5만원을 벌 수 있으면 5시간은 다른 데 쓸 수 있다. 그만큼 삶이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얘기가 나올 때마다 경총은 자영업자 등 중소상공인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를 펴며 반대하고 있다. 그 논리를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보다 대한민국 통닭집이 더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영업자 문제는 실제로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묶어둔다고 자영업자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자영업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하고 싶어서 자영업을 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일자리를 못 구해 한다는 사람이 많다. 쓸 만한 일자리만 있으면 굳이 빚을 져 가며 힘들게 자영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생계 유지가 가능한 수준의 일자리를 많이 늘리는 것이 자영업 문제의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서도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 이어 한국에는 ‘달관 세대’란 말이 등장했다. 알바를 하며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실제로 많이 있나.

 “뭔가 왜곡이 된 것 같다. 일본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한국과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편의점에서 일해도 시급 1만원은 받는다. 알바에 대한 법적인 보장 수준도 우리와 다르다. 한국에서처럼 시급 5580원을 받으면서 달관하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확충하겠다는 건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고용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면 시스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공약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무조건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고용노동부 소관으로 돼 있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범정부기구로 바꾸고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책이 동시에 논의돼야 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힘들어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종합적 접근 없이 말만 해서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알바 노동자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도 문제 아닌가.

 “물론이다. 패스트푸드, 편의점, 커피전문점, 멀티플렉스 등 한국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업종에 웬만한 대기업 그룹들이 다 진출해 있다. 이들 기업은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를 비정규직, 알바, 시간제, 최저임금으로 묶어놓고 있다. 손님은 알바 노동자를 통해 브랜드와 만나는 것이지 사장을 통해 만나는 게 아니다. 알바 노동자들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성심껏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기업도 잘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 고려는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인건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경영을 한다면 언젠가는 망하고 말 것이다.”

 -알바노조가 맥도날드를 주요 타깃으로 시위를 하고 있는 이유는?

 “‘맥도날드화’란 사회학 용어가 있을 정도로 맥도날드는 프랜차이즈 업계의 정점에 있다. 패스트푸드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프랜차이즈 업종이 맥도날드 시스템을 따라 하고 있다. 맥도날드의 변화를 통해 프랜차이즈 업계 전체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KFC 등 한국의 4대 패스트푸드 체인의 매장 수만 전국에 2000개가 넘는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만 약 10만 명이다. 맥도날드가 추구하는 가치는 오로지 속도와 효율이다. 주문하고 25초 만에 버거가 나와야 한다. 그 안에 뭐가 들어가고, 그것이 사람에게 좋은지 나쁜지는 고려 사항이 아니다. 맥도날드는 매출액 대비 인건비를 통제하는 정밀한 시스템을 통해 극단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젊은이가 배우는 가치가 오로지 속도와 효율이란 사실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던지는 매우 암울한 메시지다. 한국에서 맥도날드는 30년 가까이 저임금을 유지하며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려 왔다. 그런 만큼 이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가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패스트푸드 업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수년 전부터 ‘최저임금 15달러’ 운동을 벌여온 미국에서는 지금 사회 전반에 걸쳐 최저임금 인상 바람이 불고 있다. 시간제 노동자들의 단합된 힘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는 게 우리의 당면 목표다. 동력만 생긴다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본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신인섭 기자

구교현 위원장은 …

1977년 7월 서울 출생. 96년 우신고 졸업. 동양공전(정보통신과)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안 맞아 자퇴. 2006년부터 장애인복지단체 근무. 사이버대학 과정을 통해 사회복지학 전공. 2012년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입학. 2013년 알바노조 설립.

[인터뷰 후기] 스물셋부터 알바 경력만 10년 준비된 알바노조 위원장

구 위원장은 윈드브레이커 차림으로 중앙일보 로비에 나타났다. 지금까지 직격인터뷰에 초대된 사람 중 가장 젊다. 논리와 언변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정확한 어휘력과 정연한 논리로 그는 인터뷰어를 압도했다. TV토론에 나가면 참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2013년 8월, 고용노동부에 알바노조 설립을 신고해 2주 만에 신고필증을 받았다. 10명으로 시작한 조합원 수는 450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법정 최저시급인 5580원을 매월 조합비로 납부한다. 모자라는 돈은 530명의 후원자들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알바노조의 취지에 공감하는 교사·노무사·직장인들이다. 상근 직원은 위원장 포함, 7명.

 구 위원장은 병역을 마치고 사회에 나온 스물세 살 때부터 알바를 했다. 택배에서 햄버거 배달, 공사장 인부, 호텔 예식장 도우미, 식당 종업원, 세차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경험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그는 준비된 알바노조 위원장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