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말 바루기] 마음을 단단히 먹으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8면

“어르신, 하루빨리 쾌차하셔야지요? 진지 잘 잡숫고 약도 꼭 챙겨 드세요.” “마음을 단단히 잡수셔야 합니다. 이제 약주는 안 잡수신다고 약속하셨어요.” 홀로 사는 노인을 찾아 돌봄 봉사를 하는 이들은 애달픈 마음에 할아버지·할머니들께 이런저런 당부도 해 보지만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웃어른께 존댓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나 경어법을 잘못 이해하고 쓸 때가 있다. “진지 잘 잡숫고” “약주는 안 잡수신다고”의 경우는 문제가 없다. ‘먹다’의 높임말인 ‘잡수시다(잡숫다)’를 사용해 상대에 대한 공경심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마음을 단단히 잡수셔야 합니다”와 같은 경우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로 고쳐야 어법에 맞다. ‘마음을 먹다’는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는 뜻이다. 이때의 ‘먹다’는 “음식을 먹다”와는 달리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품다는 의미로 쓰였다. 윗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마음을 굳게 정한 것을 두고 “마음을 잡수시다”와 같이 존대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다. ‘먹다’에 높임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으시-’를 붙여 “마음을 먹으시다”로 사용해야 한다. ‘먹다’엔 겁·충격 따위를 느끼게 된다는 뜻도 있다. 이 경우도 “겁을 잔뜩 잡수신 것 같은데?”처럼 표현해선 안 된다.

 “귀가 잡수시다”로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할머니께서 귀가 잡수셨는지 크게 얘기해야 알아들으세요”와 같이 쓰는 것은 어색하다. ‘귀가 잡수셨는지’를 ‘귀가 먹으셨는지’로 바루어야 한다. “귀가 먹다”에서의 ‘먹다’ 역시 식(食)의 개념이 아니다. 귀나 코가 막혀 제 기능을 못하게 되다는 의미이므로 “귀가 잡수시다”처럼 말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음식을 섭취하다는 뜻의 동사 ‘먹다’를 높이는 말에는 들다·자시다·잡수다·잡수시다·잡숫다 등이 있다. ‘자시다’와 ‘잡수다’는 ‘들다’보다 존대의 정도가 높다. ‘잡수시다’는 ‘잡수다’에 존칭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시-’가 붙은 것으로 ‘잡수다’를 한 번 더 높인 말이라고 보면 된다. ‘잡숫다’는 ‘잡수시다’의 준말이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 [우리말 바루기]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