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중앙] Time Poor or Rich "당신도 시간 빈곤자인가요?"

한국은 경제개발협력지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노동 시간이 많은 나라다. 1995년 가입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직장인은 평균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야근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린 것.
야근을 하는 이유는 시간에 비해 업무량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직원의 행복을 보장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를 칭하는 이른바 ‘굿컴퍼니’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기업 문화를 개척해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굿컴퍼니에는 ‘우아한형제들’ ‘퓨처디자이너스’ ‘인크루트’ 등 30여 개 회사가 속해 있다. 이들 기업은 좋은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굿컴퍼니 데이’를 정해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모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각사의 시스템에 맞게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실행에 옮긴다. 삼성전자의 ‘자율 출근제’가 바로 그것. 자율 출근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 사이 직원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하루 8시간을 근무할 수 있는 제도다. 일률적인 출퇴근 시간에서 벗어나 육아 등 임직원들의 개인 사정에 따라 업무 시간을 조정함으로써 업무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올해부터는 출퇴근 시간에 상관없이 하루 4시간이상 근무하고, 한 달 동안 약 40시간의 근무 시간을 채우면 되도록 자율 출근제를 확장시켰다. 2009년 삼성전자가 최초로 도입한 자율 출근제는 시행 6년 만에 대기업을 넘어 중소기업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율 출근제를 도입하는 대기업이 늘면서 제도에 대한 믿음이 커진 것.
배달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애플리케이션 기업 ‘배달의 민족’을 제작한 우아한형제들 역시 ‘굿컴퍼니 무브먼트’의 일환으로 자율 출근제를 시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와는 조금 다른 형태인 ‘4.5일제’라는 시스템으로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의 오전을 비워주는 것.
4.5일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 보기 위해 우아한형제들의 피플팀 5인방 안연주 팀장, 이용화 책임, 김나영 선임, 나하나 주임, 김도헌 셰프를 만났다. 우아한형제들은 월요일 오전이 휴무다. 월요일 오전에 쉬도록 해 ‘월요병’을 차단하겠다는 것.
회사 업무의 특성상 야근이 잦은데, 지금 당장 야근을 없애기는 어렵기에 ‘월요병’으로 능률이 떨어지는 월요일 오전을 개인에게 넘겨준 것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점심시간까지 포함하면 고작 2.5시간 여유가 생기는 것뿐인데 삶은 몇 배 더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일요일 밤에 잠들기 전, 다음 날 출근에 대한 부담이 적어졌다. 일요일은 휴일임에도 출근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하는데 그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난 것. 월요일만큼은 ‘지옥철’을 안 타도 되고 점심시간을 쪼개서 관공서 업무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좋다.
우아한형제들의 직원들은 월요일 오전 2.5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나하나 주임은 인맥 관리에 투자한다고 한다. “야근이 잦다 보니 저녁에 약속을 잡는 것이 부담돼요. 그래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지인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러기에 점심시간은 다소 촉박해요. 월요일만큼은 제가 지인 회사 근처로 가요. 미리 도착해 기다리면 시간이 단축돼 한결 여유롭죠.”
체력 보충 시간으로 활용하는 이도 있다. “월요일의 업무 시간이 짧아졌다는 건 그만큼 주말이 길어졌다는 것과 같아요. 전 여행을 좋아해서 주말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는데 4.5일제를 시행하기 전에는 주말 여행이 체력적으로 부담되었어요. 월요일을 위해 일요일에는 일찌감치 돌아와야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힐링’을 위한 여행이 되레 ‘체력 방전’의 요인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월요일 오전이 제 시간이 되니까 그런 부담이 사라졌습니다. 월요일만큼은 늦잠을 자면서 여행을 하며 쌓인 피로를 풀어줍니다.” 이용화 책임의 이야기다. 워킹 맘인 안연주 팀장은 가족과 함께 보낸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와 함께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즐겨요. 식사 후에는 제가 직접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준 뒤 출근해요. 그래도 시간이 남을 정도로 2.5시간은 마법 같은 시간이죠.”
4.5일제는 아주 작은 변화지만 직원들은 생각지 못했던 여유가 생기고, 이는 결국 업무 성과로 연결되었다. 처음에는 늦게 출근하면 그만큼 퇴근이 늦어질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업무 시간이 짧으니 오히려 시간을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푹 쉬고 나서 일을 해서일까요? 오히려 집중력이 생겨 업무에 가속도가 붙더라고요. 4.5일제 시행 전보다 야근하는 횟수가 적어진 것 또한 시너지 효과예요.”
4.5일제 외에도 중요한 행사를 맞은 날에는 오후 시간을 선물해주는 제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본인과 직계 가족(형제나 자매는 제외)의 생일, 결혼기념일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오후 4시에 퇴근을 시키는 제도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것.
“특별한 날에 선물을 주고받잖아요. 직원들의 특별한 날을 위한 선물을 고민하다가 만들어진 제도예요.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의미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줄이면 ‘지만가’인데 ‘지만 간다(당사자만 퇴근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어요(웃음).”
김나영 선임은 특별한 날만큼 당사자를 위한 시간을 선물해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동료 중 한 명에게 특별한 날이면 사내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고, 당사자가 일찍 퇴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제도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