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 심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65년부터 70년 사이 월남을 방문한 사람은 목이 달아난 장승처럼 잎 하나 없이 서 있는 야자수의 처절한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베트콩의 잠복처를 없애기 위해 미국 공군기들이 뿌린 고엽제의 결과였다.
미군은 이 기간 중에 무려 1천2백만 갤런의 「오린지제」라는 이름의 이 고엽제를 월남의 작전 지역 촌락과 도로 주위에 뿌렸다. 그러다가 70년4월17일 미국 정부는 갑자기 오린지제의 살포를 중지했다. 이 고엽제 속에든 디옥신이란 독물에 접한 동물이 기형 새끼를 낳았음이 실험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 월남전에서 고엽제를 직접 뿌렸거나 그것이 뿌려진 지역에서 작전한 군인들 중에 암에 걸리거나 간 또는 신경질환을 앓거나 부인이 유산 또는 기형아를 낳거나 심한 피부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이 나타났다. 월남 주민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종전 후 월남을 방문한 조사단에 의해 밝혀졌다.
이렇게 해서 미국에서는 79년9월24일 월남전 참가자 중 오린지제의 피해자들은 이 고엽제를 생산한 7개 화공 약품 회사에 대해 4백억 달러짜리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당황한 화공 약품 회사들은 오린지제는 미국 정부가 준 처방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제품을 월남에서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피해가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80년 미국 정부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5년 동안 양자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끝에 최근 화공 약품 회사들이 1억8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내기로 하는 선에서 재판 없이 합의로 끝났다.
그러나 문제가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5만명의 피해자가 다시 개별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고 모든 피해자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새로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제는 월남전의 후유증, 지금까지 미국 내 여론 때문에 괄시를 당해온 월남전 참전 병사들의 울분, 또 월남전에 대한 새로운 여론의 움직임 등으로 앞으로도 계속 논쟁 거리가 되게 되어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오린지제 소송 사건의 원고 속에 미국인 말고도 같이 참전한 호주와 뉴질랜드 피해자들이 있는데 그들보다 몇십배나 많은 병사들을 출전시킨 한국의 피해자는 왜 들어 있지 않느냐는 점이다.
기적적으로 한국 참전 병사들만 오린지제의 독성에서 무사했다면 그만한 다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65년부터 70년 사이 월남에 참전한 우리 군인이 연인원으로 따져 25만명 정도는 되는데 이들 중 전투 병력 치고 고엽제로 수목이 말라비틀어진 정글을 다니지 않은 경우는 드물 것 같다. <장두성 워싱턴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