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아침잠 더 자자는 게 왜 진보의 전유물인가

중앙일보

입력 2015.04.22 00:05

업데이트 2015.04.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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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과

초등학교 시절에는 장학사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줄 알았다. 장학사가 출두하면 전교생이 학교를 대대적으로 때 빼고 광내는 대청소에 동원되었다. 특히 우리 반이 공개수업을 하여 장학사가 수업 참관을 하게 되면서는 엄청난 준비가 이루어졌다. 해당 과목의 한 학기 노트필기를 며칠에 걸쳐 새로 했고, 글씨를 잘 쓰는 아이들은 장학사가 접근 가능한 자리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수업 도중 질문을 하면 무조건 손을 들라고 했다. 단, 답을 모르는 학생은 선생님만 알 수 있도록 왼손을 들게 했다. 1970년대의 이런 해프닝은 교사의 질문에 모든 학생이 답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과시욕에서 비롯되었다.

 요즘엔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보여주기식 관행은 여전하다. 몇 달 전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하여 벌어진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는 2013년에 폐지되었는데, 평가에 대비해 기계적인 문제풀이식 수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40년 전 답을 몰라도 왼손을 들라는 지시나,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연습이나 모두 외부에 보여지는 것을 의식해 생겨난 일이다.

 현재 18개 시·도 교육청 중 13개가 진보 교육감 관할인데,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관점이 다르다. 보수는 학업성취도 평가의 부활을 지지한다. 학업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학생의 학력 미달을 조기에 파악하고 학습 부진이 누적되기 전에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반해 진보는 평가 폐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평가로 인해 경쟁이 과열되면서 본래의 의도가 변질되었고, 초등학교는 굳이 국가 수준의 평가가 아니라도 학급 담임에 의해 부진 학생이 쉽게 파악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보수는 학업성취도 평가 자체의 착한 의도에 주목하고, 진보는 평가가 가져오는 폐해를 우려한다.

 사실 교육계 대부분의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주장은 엇갈린다. 보수도 진보도 모두 학생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는데 사안마다 불협화음이 나는 것을 보면 각자의 진영을 고수하며 학생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보수의 ‘수월성 추구와 경쟁’ 그리고 진보의 ‘평등 추구와 상생’과 같이 갈등되는 가치가 경합을 벌인다. 그런 가운데 보수가 지지하는 ‘자사고’와 진보의 아이콘인 ‘혁신학교’가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부침(浮沈)한다. 서울의 경우 교육감이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사이에 자사고 재지정 결과와 혁신학교의 지원 정도가 달라졌다. 이념과 상관없는 사안에도 진영 논리가 작용한다. 오전 9시 등교가 학생의 수면권을 보장할지, 아침의 여유를 저녁의 다급함으로 바꾸는 무의미한 시간 평행이동이 될지 모르지만 9시 등교는 진보의 전유물이 되어 있다. 아침잠을 더 자고 맑은 정신으로 수업에 임한다면 학업 효율이 높아질 테니 9시 등교는 보수의 어젠다도 될 수 있는데, 이를 실시하는 교육감은 대부분 진보 성향이다.

 뜨거운 쟁점이 되어온 무상보육과 무상급식도 그렇다. 무상급식을 복지 브랜드로 삼는 진보는 보수에게 선점당한 무상보육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지금도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둘러싼 정부와 교육청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무상보육이 대선 공약임을 고려하면 생색은 중앙정부가 내고 지갑은 교육청이 연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복지의 비가역성을 생각할 때 이미 수혜 대상이 된 것을 되돌리기 어려운 면은 있지만,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중 무엇이 교육의 본질에 더 가까운지를 따지며 원점에서 복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교육은 그 어떤 분야보다 정책의 항상성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입시제도와 교육과정이 바뀌어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데 한 정권 내에서 보수와 진보가 엇박자를 낸다. 보수 광역단체장과 진보 교육감의 불편한 동거로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하는 식의 혼란 속에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우리 동네 스포츠센터에서는 트랙의 경로를 하루는 시계 방향, 그 다음 날은 반시계 방향으로 바꾸어 놓는다. 걷는 방향에서 유연성을 갖게 하기 위한 배려다. 보수도 진보도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보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보수 계열인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낙오학생 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은 모든 학생을 끌고 간다는 평등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고, 진보 진영인 오바마 대통령의 교육개혁 프로그램인 ‘최고를 향한 경쟁(Race to the Top)’은 수월성을 추구한다. 우리는 정치인 앞에 정당 이름을 붙이듯, 보수 교육감·진보 교육감 하는데 이건 ‘나쁜’ 이분법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만 생각해야 한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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