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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13조 지주사 … 튼튼해진 최태원 SK 지배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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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SK그룹 최태원(55·얼굴) 회장이 전격적으로 그룹 지배구조를 일원화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간 그룹 지주회사로서의 역할을 분담해 왔던 SK C&C㈜와 SK㈜를 하나의 회사로 합치기로 한 것이다.

 SK C&C와 SK㈜는 각각 약 1대 0.74의 비율로 합병하게 된다. 합병 주체인 SK C&C가 신주를 발행해 SK㈜의 주식과 교환하는 ‘흡수합병’ 방식이다. 합병 지주회사의 사명은 SK주식회사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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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 브랜드의 지속성 및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한 포석이다. 두 회사가 기업 결합 신고를 끝내면 총자산 규모 13조2000억원의 대형 지주회사가 탄생한다.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로 주목받았던 현대글로비스(6조1962억원·2014년 말 기준)의 두 배에 달하는 덩치다.

 SK그룹은 20일 “오늘 각각 두 회사의 이사회를 열어 양사 간의 합병을 결의하고 통합 법인을 출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두 회사의 사업 분야가 전혀 달라 합병에 따른 인위적인 인력 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은 두 회사를 합병한 데 따른 시너지 효과는 물론 정체 조짐을 보이는 그룹 경영 전반에도 새 바람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SK C&C는 SK그룹 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다. 삼성그룹의 삼성SDS와 비슷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SK㈜는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SK 브랜드 사용과 관련해 매출의 일부분을 사용료로 받는 게 주력 사업이었다.

 따라서 이번 합병으로 SK㈜는 실질적으로 사업 기반을 갖춘 사업 지주회사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SK C&C 역시 그간 자금력 부족 약점을 털어내고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최 회장이 그룹 내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사실 SK㈜는 그간 명목상으론 그룹의 지주회사였지만 실제로는 SK C&C가 실질적으로 지주회사 업무를 수행하는 식으로 역할이 혼재돼 왔다. SK C&C가 SK㈜ 지분을 31.8% 보유한 최대주주였기 때문이다. 이 중 최 회장은 SK C&C의 지분 32.9%를 가진 최대주주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새로 출범할 합병 회사의 대주주가 될 경우 SK그룹은 ‘최 회장→SK C&C→SK㈜→사업자회사’로 이어지는 4단계의 지배구조를 ‘최 회장→합병 회사→사업자회사’ 3단계로 단순화시킬 수 있게 된다.

 SK㈜ 역시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됐다. 이미 이 회사는 3월 말 현재 그룹 주력사인 SK텔레콤(지분 25.2%), SK이노베이션(33.4%), SK E&S(94.1%), SKC(42.3%), SK네트웍스(39.1%) 등의 지분을 고루 쥐고 있다. 물론 합병 과정에서 최 회장의 지분은 명목상 줄게 된다.

 예컨대 SK C&C의 경우 최 회장의 지분은 종전 32.9%에서 23.4%로 감소한다. 2대주주인 최기원(최 회장 여동생)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의 지분 역시 10.5%에서 7.5%로 낮아진다. SK그룹 측은 그러나 “대주주 지분이 종전 43.4%에서 30.9%로 줄어들지만 경영권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이 2003년 소버린 사태 같은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트라우마를 겪었음에도 지배구조 단순화를 위해 지분 감소 상황까지도 감내하기로 한 건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바람을 적극 반영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편 이번 결정이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등 여타 계열사의 합병을 유도하는 식으로 본격적인 그룹 사업 재편의 마중물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다만 합병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의 매수청구권의 행사 여부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두 회사의 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은 SK C&C가 보통주 기준 23만940원, SK가 17만1853원으로 각각 정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등 다른 대기업 그룹들도 이번 SK의 합병에 자극받아 지배구조 재편을 보다 적극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지주회사(holding company)=둘 이상의 다른 회사(자회사) 주식을 보유하며 그 회사의 경영권을 지휘·감독하는 회사를 말한다. 쉽게 말해 자회사를 관리하는 회사다. 지주회사는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지주회사’로 나뉜다. 순수지주회사는 다른 회사(자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지배·관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다. 반면 사업지주회사는 타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으면서 직접 다른 사업도 벌인다. 기업 투명성 강화 바람이 불면서 2000년대 초반 국내 대기업에 본격 도입됐다. 대기업 중엔 LG전자와 LG화학 등의 지분을 보유한 ㈜LG가 첫 지주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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