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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규제 줄였다는 정부 … 만족하는 기업 8%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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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준술
경제부문 기자

지난 9일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의 자료가 하나 나왔다. 1년 전 9876건이었던 ‘경제 규제’를 10% 줄였다는 게 골자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장관들을 모아 ‘1차 규제개혁 회의’를 열고 7시간 ‘끝장 토론’을 벌였다. ‘규제를 10% 감축한다’는 약속도 그 토론에서 나왔다. 결국 국무조정실 자료는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는 자랑이다.

 꼭 열흘 뒤인 19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5 규제개혁 인식 조사’로 반박에 나섰다. 560개 대기업·중소기업에 설문조사해 보니 규제개혁에 “만족한다”는 기업이 7.8%에 그쳤다고 했다. “보통 수준”이라는 기업(62%)이 대부분이었다.

 왜 이렇듯 심각한 ‘온도 차’가 생긴 걸까. 당초 정부는 ‘규제 족쇄’를 푸는 데 온갖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야 “경제의 골든타임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기업인들 역시 “가장 큰 고통의 하나가 공무원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읍소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규제개혁 신문고’ 제도였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그동안 9000건이 접수됐다. 과거 8% 수준이던 각 부처의 수용률도 37%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말엔 ‘기요틴(단두대)’이란 섬뜩한 용어까지 꺼내며 재계가 건의한 114개 규제를 올 상반기까지 일사천리로 풀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메디텔(의료관광호텔) 설립기준 완화와 숙박·음식업의 벤처기업 인정 같은 67건이 완료됐다. ‘민관합동 규제개선 추진단’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손톱 밑 가시’ 같은 규제를 찾아내기도 했다. ‘떡·빵·김치’ 같은 즉석 식품에 대해 퀵서비스·택배 등으로 배달이 가능케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시는 뽑아냈어도 넝쿨은 여전하다’는 게 기업들의 생각이다. 전경련 조사에서 기업들은 “핵심 규제 개선이 미흡하다”(34%)는 데 가장 불만이 컸다. 특히 “대기업·노동·금융규제의 완화가 최우선”이라는 요구가 많았다. 대기업들은 ‘수도권 규제’를 풀어 달라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 대통령도 올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규제는 ‘덩어리 규제’로 조금씩 해선 한이 없다”고 밝혔다. 그만큼 의지를 갖고 덤벼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기자회견에 따른 ‘25개 후속 조치 과제’에선 빠지고 말았다.

 기자가 최근 국무조정실에서 따로 받은 ‘규제완화 성과 자료’엔 막걸리 판매용기 제한(2L)의 개선, 신용카드의 고속도로 통행료 납부 같은 사례들이 있었다. 모두 중소업자와 국민 생활에 필요한 규제완화 조치다. 하지만 정부가 작심하고 꺼내 든 ‘기요틴’의 용도는 이런 작은 규제를 잘라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건수 채우기, 보여주기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다.

김준술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