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여인’이 무슨 짓을 했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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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영화 개봉 25주년 기념으로 NBC ‘투데이’ 쇼에서 출연진 재회… 성 인신매매 근절 운동가들은 성매매 찬양물이라고 맹비난

영화 ‘귀여운 여인’은 사업가 에드워드(리처드 기어 )와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콜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이 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콜걸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도 기여했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출연진이 영화 개봉 25주년을 맞아 재회했다. 주연 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 감독 게리 마샬은 지난 3월 24일 방영된 NBC ‘투데이’ 쇼에 출연해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를 주제로 담소를 나눴다. 1990년 3월 개봉된 ‘귀여운 여인’은 백만장자 사업가와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콜걸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4억6300만 달러(약 5145억원)의 흥행수입을 기록했다.

이 영화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심지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콜걸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도 기여했다. 미니스커트에 무릎 위까지 올라가는 롱부츠, 체모 제거용 비키니 왁스와 끈팬티 등.

흥미롭게도 그런 추세는 미국 최초의 포괄적인 연방 인신매매 관련법 제정과 우연히 일치했다. 미국 하원은 2000년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TVPA)’을 통과시켰다. 옛 소련권 국가와 동유럽 여성이 성매매로 대거 팔려오는 데 따른 대응책이었다.

또 ‘투데이’ 쇼의 ‘귀여운 여인’ 25주년 축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과 맞물렸다. 성매매 근절을 위한 ‘인신매매 피해자를 위한 정의법(JVTA)’ 제정이 피해자의 낙태 시술 비용 부담 문제를 둘러싼 의견 충돌로 의회에서 계류된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인신매매는 보기 드문 초당적 이슈 중 하나다. 특히 어린이와 관련되면 여야가 한 목소리로 엄격한 법안 제정을 외친다. 그러나 성매매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 같은 성인이 관련된 문제에선 매춘을 여전히 ‘선택 가능한 직업’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원하거나 심지어 즐길지 모르는 직업이라는 의식이 뿌리 깊다. 물론 영화 ‘귀여운 여인’이 그런 인식을 부풀리는데 기여했다. 사회운동가들이 그 영화를 오랫동안 비판해온 이유다.

전 뉴욕 판사로 여성 인신매매 피해자를 돕는 단체 가족안식처(Sanctuary for Families)의 대표인 주디 클로거는 “‘귀여운 여인’이 나온 지 25년됐다고 축하해야 한다는 발상에 경악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그렇다고 치고 번듯한 언론사가 그 영화를 찬양하는 건 정말 실망스럽다. 어쩌면 25년 전엔 인신매매가 피해자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변명할 순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 피해를 너무도 잘 안다. 매춘은 여성이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생활방식이 결코 아니다.”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 빅터 말라렉은 수년간 아시아의 섹스관광과 세계의 성인신매매 현황을 조사하고 북미의 온라인 ‘존(John)’ 커뮤니티에 침투한 뒤 저서 ‘매춘과 섹스 구매자들(The Johns: Sex for Sale and the Men Who Buy It)’을 펴냈다. 그는 몇 년 전 미국 공영방송 PBS의 ‘프런트라인’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십대 소녀인 수많은 여성이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갖고 ‘이게 아주 좋은 직업이야’라고 생각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영화 귀여운 여인을 봤는데 나도 리처드 기어 같은 돈 많고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어. 그래서 매일 밤 거리에 나가 뚱뚱하고 기름이 줄줄 흐르고 털북숭이인 중년 백인 남자 10명, 15명, 20명, 30명의 욕구를 만족시켜 줄거야. 화대를 포주에게 넘겨준다고 해도 상관없어’라고 누가 말하겠나?”

‘귀여운 여인’이 개봉된 이래 수년 동안 인신매매 근절 운동가, 여권단체, 자칭 노예해방론자들은 그런 여성이 피해자로, 섹스 구매자가 범죄자가 되도록 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성착취에 반대하는 도시들(CEASE)’을 이끄는 지바 크랜머는 미국의 여러 도시들과 협력해 8년 안에 성매매 수요의 50% 감소를 목표로 한다. 크랜머는 “영화 ‘귀여운 여인’은 인생을 망치는 매춘을 터무니없이 미화했다”고 말했다. “섹스 구매자 대다수는 영화에서처럼 매춘 여성에게 딸기와 샴페인을 대접하거나 고급 쇼핑가에서 맘껏 물건을 사게 해주지 않는다. 성매매는 첫 데이트가 아니다.”

실제로 현실은 결코 즐겁거나 아름답지 않다. 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매춘부 일을 시작하는 나이는 평균 12~14세이며 매춘부의 70% 이상이 폭력에 시달린다. 미국의 경우 거리에서 일하는 매춘부의 피살율은 다른 여성보다 40배, 택시 기사 같은 가장 위험한 남성 직업 종사자보다 6배 이상 높다.

아일랜드 작가 레이철 모런은 저서 ‘나의 매춘 여정(Bought and Paid For: My Journey Through Prostitution)’에서 성매매에 몸담은 6년을 돌이켰다. 모런은 매춘을 하려면 여성은 “지독하게 강해야 한다”고 그 책에 썼다. 또 미국의 여권운동가 안드레아 드워킨의 말도 인용했다. “매춘은 하나의 개념이 아니다. 입이나 질, 항문에 보통은 페니스, 때로는 손, 때로는 물건이 삽입되는 행위를 말한다. 한 사람이 그러고, 또 다른 사람이 그러고, 또 다른 사람이 계속 그런다.”

성매매는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큰돈이 된다. 어쩌면 수익이 너무 커서 성매매가 사라지지 않는지 모른다. 미국에서만 성매매로 발생하는 수입이 연간 95억 달러에 이른다.

인신매매 근절 운동가들은 ‘투데이’ 쇼가 방영된 그날 이른 아침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소파에 느긋이 앉아 진행자 매트 라우어와 대화를 나눌 때 미국 전역의 성매매 피해자들은 20~48차례나 섹스를 강요당한 뒤 하루 일을 마무리했다고 개탄했다.

가족안식처의 클루거 대표는 “이 영화가 동화나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귀여운 여인’은 폭력적이고 모욕적이며 파괴적인 행위를 미화한 영화다. 우리가 만나는 피해 여성은 착취당하고 심한 정신적·육체적 외상을 당한 사람들이다. 회복은 매우 어려우며 개인에 따라, 또 매춘을 시작한 나이에 따라 다르다. 어떤 여성은 13세 때부터 매춘을 강요당했다.”

‘귀여운 여인’의 25주년 축하는 그 판타지의 끝이 아니라 재탄생의 시작일지 모른다. ‘귀여운 여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작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니나 버얼리 뉴스위크 기자,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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