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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토록 잔인한 4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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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1년 전 그날이 생각난다. 날씨는 좀 흐렸지만 출발은 평범한 하루였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 휴대전화 알림으로 배의 침몰 소식을 들었다. 걱정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점심은 대학 교수가 된 한 선배가 거하게 내는 자리였다. 성공한 인생사를 축하하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번에는 ‘전원구조’란 소식이 들려왔다. 옆자리 휴대전화에도 일시에 ‘딩동’ 알림이 들어왔다. 점심은 왁자지껄 유쾌했다. 모든 비극이 그러하듯 그 시간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회사로 돌아오고 잠시 후,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게 지난해 4월을 보냈다. 잊지 말자고, 가만히 있지 말자고,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많이 슬펐고, 많이 화가 났다. 고작 글 쓰는 게 전부인 나는 글쓰기가 힘들어서 글을 쓰다 멈추고 울기도 했다. 한동안 이 ‘분수대’ 칼럼의 주제 또한 계속 그날에 머물러 있었다. 웃고 떠드는 TV 같은 일상으로 돌아오기에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나보다 먼저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이 야속하게도 여겨졌다. 마찬가지로 일상으로 돌아간 나를 원망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이 다 그랬다.

 1년이 흘러 다시 돌아온 그날은 더욱 참담하다. 날씨마저 기막히게 스산하고 종일 비가 뿌렸다. 그토록 달라지자고 했건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가만히 있지 말자고 했지만, 모든 것은 가만히 그대로다. 잊지 말자고 했지만, 이젠 잊지 말자는 이들과 그만 잊자는 이들이 서로 적이 된 형국이다.

 TV에선 아마도 역대 최고급이 될 만한 정치 스캔들 보도가 연일 터져 나온다. 한 기업가가 ‘살생부’와 함께 목숨을 버린 파장이 만만치 않다. 권력의 수뇌부가 전부 검은 돈과 연루됐다는 의혹을 사고, 목숨을 걸고 결백을 주장하는 한 정치인의 외침은 허망하게만 들린다. 그간 각종 TV 정치드라마에서 신물 나게 봐온, 부정과 야합으로 비틀린 정치와 권력이 픽션 아닌 현실로 거기 서 있다.

 지난해 4월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의 민낯을 본 것도 모자라 올 4월에는 진흙탕 같은 현실 정치의 민낯을 보고 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나는 4월이면 “눈이 부시네 저기…그날 쓰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라는 노래 ‘진달래’를 들으며 비감에 젖곤 했다. 알려진 대로 4·19를 기리는 노래다. 오늘 불쑥 이 노래를 꺼내 듣는다. 우리의 4월은 왜 이리도 오랫동안 잔인한가.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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