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망록에 등장한 반기문 … 성완종 생전 "부담없는 사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2013년 8월 충청포럼 찾은 반기문 2013년 8월 2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충청포럼 행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이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과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당시 반 총장은 귀향 휴가를 받아 귀국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동그라미 안),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왼쪽 첫째)도 행사에 참석했다. 반 총장은 성 전 회장이 2000년 만든 충청포럼의 창립 멤버다. [사진 시사저널]

“반기문을 의식해 (이완구 총리가) 계속 그렇게 나왔다. 반기문과 가까운 건 사실이고 ….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지난 9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검찰 수사가 자신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친분 때문에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완구 총리가 차기 대선을 앞두고 같은 충청 출신인 반 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기획수사를 벌였다는 얘기다.

 이 총리는 16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반 총장의 대권과 저를 결부해 고인을 사정수사했다는 건 심한 오해”라고 강조했다.

 ‘성완종 수사’ 파문이 반 총장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성 전 회장이 반 총장과 가까운 건 사실이다. 그는 지난해 말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반 총장에 대해 “나와 가깝고, 서로 부담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이 김대중 정권 때 차관을 하다가 (장관 인사에서) 물을 먹었다. 그때 제가 (충청)포럼을 함께 만들었다”고도 했다.

성 전 회장이 2000년 만든 충청포럼은 충청도 출신 정·관계 인사들의 모임으로, 반 총장은 창립 멤버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방한할 때마다 충청포럼 모임에 참석했다.

 본지가 입수한 ‘성완종 비망록(다이어리)’에도 반 총장의 이름이 세 차례 등장한다. 2012년 10월 30일 낮 12시엔 ‘반기문 가족 오찬’이라며 국회 귀빈식당에서 식사를 같이한 것으로 돼 있다. 반 총장이 서울평화상을 받기 위해 귀국한 때다. 그러나 당시 반 총장의 일정은 국회의장단 및 주한 외국대사들과 함께한 공식 일정이었다. 2013년 8월 26일과 27일에도 반 총장을 롯데호텔에서 만났다고 적혀 있다. 26일 일정에는 ‘충청포럼 운영위 참석’이라고 돼 있다. 이때는 반 총장의 귀향 휴가(22~27일) 기간이다.

 성 전 회장은 그동안 반 총장의 정치 후견인임을 자임해 왔다. 지난해 6월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잃은 뒤 가까운 인사들에게 “복권되면 20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나가도 당선될 수 있다. 반 총장이 올 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성 전 회장의 측근은 “의원직을 잃은 뒤 여당 실세들에 대한 성 전 회장의 서운함이 컸다”고 전했다. 공교롭게 성 전 회장이 의원직을 상실한 뒤 야권에선 ‘반기문 영입론’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16일 “반기문을 띄우는 사람들이 ‘뉴DJP 연합’을 하자는 요청을 해왔다”며 “충청 출신 반 총장이 호남과 손잡으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 전 회장이 ‘밥을 한번 먹자’고 했지만 (연합했다가) 반 총장이 출마하지 않으면 당 후보들이 다 죽어버리기 때문에 내가 뉴DJP 연합을 틀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야권 내에선 김한길 전 대표도 성 전 회장과 ‘반기문 대망론’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있다. 김 전 대표는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날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 2013년 8월엔 충북 충주에서 열린 세계조정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반 총장 부부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이상민(대전 유성) 의원은 “성 전 회장이 반 총장을 물심양면 지원했다는 것은 충청권에선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반 총장이 정치를 한다고 가정하면 성 전 회장의 죽음으로 큰 손실을 본 셈”이라고 말했다. 박수현(충남 공주) 의원도 “성 전 회장이 이끌던 서산장학회는 그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로 본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 데 기여한 충청도가 ‘팽’ 당했다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