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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뿐이던 삶 … 암 극복하니 새로운 세상 열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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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경미는 특히 모차르트를 즐겨 연주하며 1990년대부터 이름을 알렸다. 2년 전 암 완치 판정을 받고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 조세현]

‘이만큼 화려하게 살았으면 됐다.’ 6년 전 봄, 피아니스트 이경미(53)씨가 했던 생각이다. 그는 한 병원 진료실에 앉아있었다. 창 밖의 벚꽃을 보며 의사에게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화려한 피아니스트였다. 어린 시절 말보다 도레미를 먼저 배웠다. 초등학교·중학교를 일본에서 나오고 16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노스캐롤라이나 음악원 최초의 한국인 학생으로 공부했다. 소련 시절의 러시아에서 음악을 배웠고 한국에 돌아와 TV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며 얼굴을 알렸다.

 “암 판정을 받고 생각해보니 이만큼 누리면서 산 사람도 드물 것 같았다. 삶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씨는 “처음에는 쉽게 포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자서전 『러브 스토리』를 냈다. 삶을 포기하기는커녕 이 악물고 버틴 이야기가 책 속에 있다. 이씨는 “그 힘은 오로지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남동생은 손수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줬다. 부모님은 환자보다 더 강한 의지로 곁을 지켰다.

 2년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고 2011년엔 도쿄 산토리홀에서 재기 연주를 열었다. 연주자들이 선망하는 무대다. 그러나 이씨의 연주는 아슬아슬했다. 몸은 여전히 아팠고 연습 중 쓰러지는 일도 많았다. 산토리홀 무대 뒤에 의사가 약·주사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씨가 연주를 했던 이유 역시 가족 때문이다. “연주회를 마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모두 ‘나를 위해 한번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무대에 섰다.” ‘나를 위해 헌신한 가족을 위해 이 정도도 못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이씨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관객 얼굴 하나하나가 영화의 느린 장면처럼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암 환자에서 피아니스트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헝클어졌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각지에서 무대에 다시 올랐다.

 2013년 말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인생관은 투병 전과 달라져 있었다. “한평생 피아노만 우선이었고 나머지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자고 미뤘다. 이제는 다르다. 피아노보다 가족, 주위 사람이 먼저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고 했다. 잘하는 연주보다도 청중에게 힘을 주는 연주를 꿈꾸게 됐다. 8월 일본 기타리스트 무라지 가오리(37)와 함께 공연할 계획이다. 무라지 역시 활발히 활동하다 2년 전 설암(舌癌) 수술을 받았다. 이씨는 “용기없고 지친 사람들의 희망이 될 만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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