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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직격 인터뷰

송호근 묻고 염재호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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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성의 죽음, 풀 죽은 청춘은 대학 책임이다. 총장들이 머리 맞대고 해법을 찾아낸다면 안 될 것도 없을 텐데…. 염재호 총장(오른쪽)은 단단히 화가 났다. 고려대를 짊어진 그가 교육개혁에 나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교수 염재호의 언변과 용모를 따라갈 사람은 드물다. 거기에 아이디어와 열정이 여름날 분수처럼 넘친다. 그간 염 교수가 쏟아 놓은 아이디어만 주워 담아도 책 몇 권 분량은 족히 될 것이다. 기어이 대학을 개혁하겠다는 남다른 의지가 그를 총장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는 고려대를 교두보로 대학 개혁의 전사로 나섰다. 이 인터뷰는 개혁 실천을 확약하는 공증이다.

송호근=총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대학 총장은 큰일을 하는 사회의 어른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행정가처럼 보입니다. 주요 대학의 총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총장 리더십은 어디로 갔나요?

 염재호=저는 ‘제3세대 총장론’을 얘기합니다. 옛날 유진오·김상협 총장은 ‘지사형 총장’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학도 경쟁체제로 돌입하면서 펀드레이징도 해야 하고 조직 관리도 해야 했지요. 지사형 총장에서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으로 바뀌었어요. 지사적인 이야기는 묻혀 버리고 대학 대내외 구성원들이 요구하는 것에 매몰된 거죠. 그러다 보니 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에 대학이 아무런 지성적인 답을 해줄 수 없는 상태가 됐어요. 제3세대 총장론이란 이 둘의 조화를 이루는 리더십입니다.

 송=대학은 다른 기관들이 못하는 역할, 예컨대 기술사회의 폐단을 걸러내는 책임이 있어요. 걸러낸다는 것은 지성의 목소리인데 환란 이후 15년 동안 급격하게 위축됐다고 봅니다.

 염=70년대 이후 대학이 이념적인 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오다가 민주화 이후 90년대부터 그런 역할이 작아졌죠. 개별 학문에 대해 수월성을 요구하고 평가하는 조류가 대학을 옥죄고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거기에 몰입하다 보니 의미 있는 지성담론이 줄어들었어요. 지금은 대학이 수동적 위치로 물러났기에 교수들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대학 총장이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는 광경은 사라진 듯합니다. 대학은 앞으로 20년, 30년 뒤 이 나라와 이 세계를 이끌어 갈 사람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제 용어로는 ‘개척하는 지성’이죠.

 송=우선 청소년들을 옥죄는 대학입시부터 개혁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예 입시를 없앤다면 어떨까요? 고려대부터 없앨 의향은 없으신지.

 염=사교육의 만연, 비용 과부담, 공교육의 붕괴, 늦은 결혼, 저출산 등 우리 사회의 고질이 대학입시에서 비롯되지요. 그래서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들어오기 어렵게 만들려고 합니다. 일본 게이오대 후지사와 캠퍼스의 예를 들면 고3 학생들에게 1년 내내 나를 뽑지 않으면 게이오가 손해 보는 이유를 쓰게 합니다. 그걸 보고 교수들이 면접 대상자를 뽑지요. 교수 3명이 두 시간을 인터뷰해요. 두 시간을 버티면 합격이죠. 형식지만 잘 외워 하나 틀리면 2등급 되는 그런 학생들이 아닌, 정말 도전하는 학생들을 뽑고 싶은데 행정 규제가 문제죠. 정부가 이미 2017년도 입시정책을 보고하라 해서 냈습니다. 2017년까지 이미 결정된 거죠.

 송=그대로 해야 하나요?

 염=대학은 입시를 마음대로 못합니다. 규제가 엄격해요. 예컨대 기여입학제, 고교 등급제, 본고사는 안 된다는 ‘3불 정책’이 있지요. 그래도 글로벌스탠더드에 비춰 정말 부끄러운 규제를 이번에 없앴어요. 첫째는 출석부.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이 ‘아니 매일 강의시간을 5분씩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겁니까’라고 항의합니다. 둘째, 상대평가를 하다 보니 점수를 잘 받으려고 학생들이 학점 노예가 됐지요. 이걸 없앴어요. 셋째, 시험 감독 폐지입니다. 제가 다녔던 스탠퍼드대는 시험 감독을 못하게 돼 있거든요. 옆 사람 답이나 책을 보고 쓰는 문제는 스탠퍼드답지 않다고 생각한 거죠.

 송=3불 정책 같은 것을 다 풀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겠죠?

 염=오히려 더 불편한 진실이 있어요. 선진국은 대학 교육에 거의 개입하지 않아요. 초·중·고는 지방자치단체가 관장하고 영·유아나 보육은 정부가 담당합니다. 우리는 교육부가 대학을 담당하고 초·중·고는 주로 교육청에서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육부 규제방식이 초·중·고에서 하던 관행을 못 벗어나요. 출석부가 대표적인 예죠.

 송=우리 대학 진학률이 75%로 세계에서 제일 높기 때문에 대학 교육이 보편 교육에 근접하죠. 현실이 그러니까 획일적 규제를 해야 하는 형편이겠죠.

 염=저는 대학은 보편 교육이어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보편 교육이라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지요. 사립대인 우리 학교 예산이 거의 2조원이 되는데 정부에서 주는 돈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거죠. 그러려면 자율형 사립고처럼 대표적인 대학에 대해서는 자율형 사립대를 인정해 등록금 규제도 풀어야죠. 등록금을 7년째 못 올리고 있는데, 결국 교수 대 학생 비율이 나빠지고 국제경쟁력을 높일 여력도 떨어지게 되죠. 죄송한 얘기지만 서울대는 1년에 4000억원 정도 예산 지원을 해줍니다만.

 송=요약하면 입시와 교육은 ‘능력 위주’로 하고 있는데 규제는 일종의 ‘평등주의’다, 그러니까 능력주의와 평등주의의 결합이 낳는 대학의 모순을 깨고 싶으신 거죠?

 염=네. 미래 교육을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투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사교육엔 그렇게 많이 투자하면서 대학 교육에는 투자를 못하게 막고 있는 모순, 이것은 풀어야 되죠.

 송=어떤 방법으로?

 염=불편한 진실들을 자꾸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예컨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만들어 놨잖아요. 1년에 20억~30억원을 학교가 지원해야 운영이 됩니다. 서울대는 정부 예산이 들어오니까 괜찮지만 우리는 문과대 학생들 등록금을 받아 변호사 되겠다는 학생들에게 지원해 줘야 되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법학전문대학원은 1년 등록금이 2000만원 정도인데요. 30~50%까지 장학금을 주지 않으면 학생 정원을 줄이겠다, 이런 압력을 가하거든요. 그 재원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서 하라는 식이죠.

 송=인문대·사회대 학생들 등록금을 받아 가지고 법대 주는 거네요.

 염=그런 불편한 진실들을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지원 안 하려면 정부는 손을 떼야 합니다. BK 있잖아요. 대학원생들 후속 세대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 아닙니까. 그런데 대학원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에서 돈을 내 과학인재들을 키우는 KAIST가 왜 BK 프로그램에 들어갑니까, 예산 지원을 받는 서울대가 왜 들어와야 됩니까?

 송=일리가 있네요.

 염=고려대·연세대·경희대·한양대 공대가 우리 사회에 공헌한 바는 매우 크죠. 이 사립대 이공대에 1년에 200억~300억원만 줘도 잘할 수 있어요. KAIST는 2000억원 정도 들어가잖아요. 광주과기원·대구경북과기원·울산과기대를 과기원 체제로 바꾸고 부산·경남도 또 만들어 달라고 그러죠, 모두 BK 지원 대상입니다. 이렇게 재원을 다 분배하고 사립대는 한 푼도 안 대줍니다. 교육부가 그럽니다. 이 조건을 듣지 않으면 BK건 장학금이건 모든 정부 지원은 다 환수하겠다.

 송=일종의 협박인데요.

 염=협박입니다. 10년 전에도 학령 인구가 줄어드니까 다 10%씩 정원을 줄이라고 했어요. 제가 그때 고려대 기획예산처장이었는데 10%를 줄인 학교는 20억, 30억원 지원해 주겠다고 해요. 우리는 10% 줄이면 400명, 4년이 되면 1600명, 그러면 한 100억원 이상 손실을 보니까 ‘우리는 안 줄이고 돈 안 받겠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지나서 감사가 나왔죠.(웃음) 오비이락이라고 한다면 할 수 없는 거지만.

 송=총장의 리더십 유형에서 지사형, CEO형에 하나 더 붙여야 되겠네요. 운동가형. 계속 목소리를 내야 되니까.

 염=네. 난관이 있으면 헤치고 가야죠.

 송=청년세대가 저렇게 풀이 죽은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총장들이 청년들에게 출구를 만들어 줘야 하죠. 교육부에 제안도 하고 사회적 여론도 환기시키고 말이죠. 염 총장께서 깃발을 드시겠지요?

 염=네. 당연히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입시지옥을 바꾸려면 중·고교를 5년제로 줄여 빨리 대학에 들어오게 하고 대학은 5년제로 하면 좋지요. 2년 정도 교양 교육을 탄탄하게 시키고 3년 정도 전공을 시키면 어떨까 해요.

 송=3-3-4인 현재의 학제를 문명사적 단계가 엄청나게 바뀌었기 때문에 2-3-5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정말 몇 십 년 앓아 왔던 고통들, 사교육, 입시지옥, 청년실업이 다 연결되니까 대학에서 풀면 바람직하지요.

 염=저는 입학처를 인재발굴처로 바꾸려고 생각해요. 우리가 찾아 나서야겠다, 사교육을 안 받은 학생들 중에서 원석을 찾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성적 하고는 관계없이 발굴하려고 해요. 학부모나 졸업생들이 인내심을 갖고 봐 줘야 합니다. 학원에서 ‘아, 이제 고려대는 점점 수능 커트라인이 낮아지고 있다’고 얘기해도 흔들리지 말아야 해요. 에듀케이션(education)의 원뜻은 이듀스(educe)에서 나왔죠. 이듀스는 끌어낸다는 건데 교육은 잠재력을 얼마나 많이 끌어내 주느냐에 달렸어요. 대학이 그런 역할을 했을까, 좋은 학생들을 뽑으려고만 노력했지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이 패러다임을 고려대에서 바꿔 보고 싶다는 거죠. 대학의 무책임이 여기에 있어요.

 송=대학은 출세의 거대한 디딤돌, 가문의 영광을 위한 디딤돌 역할만 해 왔지요.

 염=그렇죠. 21세기에는 달라져야 합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휼렛패커드·애플·구글 다 차고에서 시작한 건데, 바로 대학의 개척정신입니다. 스탠퍼드대는 학생들이 미국의 산업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신규 출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가장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거지 우리 학생들이 고시가 몇 명 됐고, 대기업에 몇 명 취업했고, 취업률이 얼마다 그거는 대학으로서 굉장히 소극적이고 부끄러운 얘기죠. 우리는 도전정신·개척정신에 가득 찬 가능성 있는 원석들을 캐서 키워 보고 싶은 거죠.

 송=교육부 정책 중에서 우선 좀 이거는 철회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있어요? 모든 규제를 다 풀 수는 없는데.

 염=우선 모든 정책이 단일 기준이에요. 획일적입니다. 관에다 사람 키를 맞추는 격입니다. 그래서 편법이 많이 동원돼요. 예를 들어 산학 협력 평가에서 기술 이전 실적을 점수화해요. 그걸로 지원 기준을 삼는 거죠.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기술을 공짜로 주고 이전했다고 얘기해요. 그런 거는 모든 사회를 다 속이게 만드는 거지요. 아무튼 바꿔 보겠습니다.

 송=한국 고등교육에 희망이 있고 잠재력도 엄청납니다. 그러나 규제에 속박돼 있다, 대학 총장들도 그 규제의 압박 속에서 출구를 못 찾았고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염 총장께서 그 원대한 출구를 만들어 보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리가 앓고 있는 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종합적인 창구가 거기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응원을 보냅니다.

글=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염재호 총장은 …

1955년 출생. 고려대 행정학과 학·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기획실장·기획예산처장을 거쳐 올해 3월 19대 총장 취임.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정부 산하단체에서 두루 자문하고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와 중앙일보 등 신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