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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세월호 한 여고생의 짝사랑 그 첫사랑에 가슴이 아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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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류정화
JTBC 국제부 기자

세월호 희생자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화장장 언저리에서 수십 명이 차례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바짓단이 달랑 들려 올라간 교복 아래로 때 묻은 운동화를 신고 친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선 아이들, 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끝내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에 한껏 참담해졌을 때였다. “저기 봐. 왔어, 왔어.” 교복을 입은 두 여학생이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역시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고개를 떨군 채 서 있었다. 슬쩍 다가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자신들의 친구가 짝사랑하던 남자애라고 했다. 그 남자애도 사실은 친구를 좋아했던 모양이라면서 아이들은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키득거렸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이제 갓 열일곱, 열여덟 살이 됐을 터였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어린 학생들인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을 누릴 시절이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소나기’나 ‘동백꽃’같이 첫사랑을 다룬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들은 물론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도 이들 또래가 아니던가. 말 그대로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에서도 ‘키들키들’ 웃음을 터뜨린 청춘이 더 서럽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내 첫사랑도 그때쯤이었다. 교문 담벼락을 따라 가꿔진 화단에는 목련 꽃이 만개해 있었다. 그 아래에서 내가 먼저 고백했다. “나는 니를 좋아하는데 니는 내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수십 번 연습한 말을 마침내 밖으로 꺼냈을 때 그의 당황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학창 시절의 추억이다. 팍팍한 수험생활을 이겨 낸 원동력이기도 했다. 다행히 수학여행도 별 탈 없이 다녀왔다. 화장장에서 영정으로 만났던 여학생도 살아 있었더라면 나와 비슷한 추억 하나쯤은 갖게 되지 않았을까.

 정확히 1년 전 일이다. 수면에 뒤집어진 배가 수심 44m로 가라앉는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그때 사람들은 다같이 슬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중 일부는 “지겹다. 그만하라”고 했고, 급기야 어묵을 입에 물고 조롱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세월호특별법과 인양 문제를 논의하면서 갈라진 국론은 회복이 어려운 상태다. 법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돈으로 보상하는 것도 물론 중요할 터다. 하지만 돈을 앞세우다 생명을 잃은 세월호 사고의 교훈을 생각한다면 아이들의 잃어버린 청춘과 사랑에 다시 한 번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상처를 안고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온 단원고 아이들이 “학교에 핀 꽃을 보면 희생된 친구들이 금방이라도 ‘같이 사진 찍자’며 돌아올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봄꽃을 볼 때면 꽃보다 아름다웠던 아이들이 생각날 것 같다.

류정화 JTBC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