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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완구 총리, 조속히 사퇴하고 수사에 응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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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전 박근혜 대통령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면담했다. 두 사람은 이완구 총리 거취를 포함한 성완종 사건의 처리, 특검 여부, 공무원 연금개혁 등을 논의했다. 김 대표는 당내외의 여러 의견을 전했으며 대통령은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특검에 대해 대통령은 “진실규명에 도움이 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해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회동은 중요한 변곡점이다.

 보통 해외순방을 앞두고 대통령이 면담을 가진다면 그 대상은 국무총리여야 한다. 대통령의 부재 중에 국정을 챙기는 ‘대행’은 총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이 총리를 제치고 당 대표를 만난 것은 총리 거취를 둘러싼 논란을 대통령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김 대표가 전달한 여론의 줄기는 이 총리가 직을 수행하는 데에 중요한 장애가 발생했다는 것일 게다. 대통령은 이런 여론을 중요하게 인식했으며 총리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녀와서 결정”이라는 표현은 총리의 체면을 존중해 주는 것일 뿐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대표 회동은 형식 자체가 이 총리에 대한 사퇴 권유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총리는 조속히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이 순리다. 국정의 안정을 생각하면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 중에 ‘총리 부재(不在)’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조속히 사퇴하고 수사에 응해 혼란을 정리하는 게 진정한 안정일 것이다. 부총리 2명과 청와대의 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 그리고 당 지도부가 긴밀히 협력해 대통령 부재 중의 국정을 처리하면 된다. 3000만원 수수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 총리는 의혹에 대처하는 능력과 자세에 커다란 결함을 보였다. 반복된 거짓말과 “기억나지 않는다”는 무책임은 그가 위기를 관리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다수 국민과 공무원의 신뢰를 잃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증언과 48분 성완종 녹취록의 공개, 그리고 성 회장이 작성해 놓은 비망록 등으로 사건은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그런 검찰의 독립된 수사 의지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권력자들의 거짓말이 이어지면서 권력에 대한 국민의 의혹은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수사를 열심히 하는 것만큼 국민이 열심히 믿어줄 상황도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론은 특검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통과된 상설특검법에 따르면 특검은 국회의 의결뿐 아니라 대통령의 결정으로 실시할 수 있다. 대통령이 결정하면 중립적인 7인 특검추천위원회에서 2명의 후보를 고르고 대통령이 최종 선택한다. 준비기간을 합쳐 늦어도 한 달 후에는 특검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그때까지 면밀한 수사를 진행해 놓으면 특검의 활동은 신속하게 끝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