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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Talk Talk] 아무 문제 없는 시장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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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서울 시내 대형서점이 갑자기 폐쇄됩니다. 출입문이 닫히고 경찰 병력이 배치됩니다. 손님은 의아하고 경영진도 영문 몰라 비상입니다. 전경 버스 위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옵니다. “이 장소에 음란물이 비치되어 있고, 청소년 보호 수단도 부족하여 접근을 차단합니다.”

 최근 디지털 세상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서점 대신 ‘레진코믹스’를, 경찰 대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대입하면 됩니다. 인터넷 만화인 웹툰을 유료 서비스하는 레진코믹스 홈페이지는 지난달 24일 접속이 전면 차단됐습니다. 방심위가 여기 등록된 성인용 만화 중 일부를 ‘음란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사이트 이용자는 물론 업체도 아무런 사전 공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과잉 검열’이라는 반발이 쏟아지자 방심위는 절차 상 문제를 인정하고 3시간 만에 차단을 해제합니다. 방심위는 “레진코믹스 내 일부 성인 만화에 모자이크가 불충분하고 성인 인증에 빈 틈이 있다”며 해당 만화에 대한 개별 조치를 이달 말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3년차 벤처기업인 레진코믹스는 디지털 콘텐트를 돈 받고 팔아 흑자 내는 몇 안 되는 업체입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을 통한 웹툰 유통이 대세가 되면서 ‘만화는 공짜’ 인식이 박혔습니다. 포털이 클릭 수로 원고료를 매기다 보니 작가의 개성과 철학보다는 ‘보편적 클릭’을 좇는 만화들이 빠르게 생산됐고 소재와 형식도 비슷해졌지요.

 이때 ‘돈 주고 볼만한 만화’의 기치를 들고 나온 레진코믹스 안에서 작가들은 포털에서 못한 다양한 작품을 그려냈습니다. 700만 독자에게서 나온 매출 100억원의 70%는 작가들이 가져갔습니다. 레진코믹스가 지난해 대한민국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 이유입니다. 레진코믹스는 성인 인증이 철저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음란성’ 여부도 짚어야겠지요. 하지만 방심위는 기억해야 합니다. ‘모두를 위한, 아무 문제 소지 없는 만화’만 유통되는 시장은 결코 모두를 만족시키지도, 아무 문제 없지도 않았다는 것을요.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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