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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꽃피는 저수지, 웅장한 절벽, 산나물 천지 … 김삿갓도 반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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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이 봄 여행지로서 좋은 건 다채로워서다. 어서 카메라를 꺼내라고 재촉하는 듯한 그림 같은 풍경의 세량제가 있고, 갓 돋아난 봄나물을 뜯고 맛볼 수 있는 산나물 공원이 있고, 봄바람 맞으며 쉬어가도 좋을 정자도 있다. 말하자면 싱그러운 포만감을 주는 고장이 화순이다. 화순에서 봄의 한복판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카메라와 숟가락, 그리고 체력만 있으면 된다.

저수지에서 건진 봄 - 세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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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의 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외딴 마을 세량리의 저수지 세량제(세량지)의 몫이다. 인터넷에 ‘화순’ ‘봄’을 함께 검색하면 가장 많이 뜨는 사진 속 주인공이 바로 세량제다. 저수지 주변으로 삼나무며 버드나무며 벚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덕분이다.

“벚꽃이 멋을 부리는 4월 중순부터 하순까지는 주말마다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든다니까요.” 이종구(58) 세량리 이장의 재촉에 마음이 급해진다. 봄을 찾아 새벽

1시 세량제로 찾아간다. 동이 트려면 한참 먼 시간인데도, 저수지 주변에는 사진 동호인의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만 올려놨을 뿐 영점사격조차 하는 이가 없다. 아직 때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 푸념인지 설렘인지 모를 말소리가 들린다.

“해 뜨고 저수지 위로 벚꽃이 비칠 때가 가장 예쁜데, 원하는 각도에서 찍으려면 밤새 자리 잡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햇볕이 숲 사이로 비스듬히 저수지를 비출 즈음, 벚꽃은 만개하고, 활짝 핀 벚꽃이 바람 없이 잔잔한 호수 위로 드리우고, 때마침 물안개가 저수지 전체를 장악하는 순간. 이른바 사진꾼들이 꼽는 세량제의 황금 조건은 이런 식이다.

세량제는 사실 관광지보다 출사지에 가깝다. 제방 길이가 70m에 불과한 작은 저수지여서 산책하기에도 규모가 옹색하고, 저수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니 구경거리로도 다채롭지 못하다. 하나 렌즈 안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빛 따라 바람 따라 시시각각으로 극적인 풍경을 연출하니,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이만큼 완벽한 봄도 없다.

세량제가 세간에 알려진 건 오랜 일이 아니다. 2006년 공원묘지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가, 몇몇 사진작가에 의해 이국적인 풍경으로 소개되면서 극적인 반전을 맞았다. 2012년 미국방송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에도 들었다.

동이 트자 세량제가 본색을 드러낸다. 흰 벚꽃과 삼나무가 물 위에서 조화를 이루고, 셔터음과 새의 지저귐이 리듬을 맞춘다. 나흘 내내 세량제에서 아침을 맞은 week&의 카메라에도 벚꽃과 물안개가 드리운 저수지의 봄이 담겼다.

●여행정보=내비게이션에서 세량제를 검색하면 세량리 마을 입구까지 안내해준다. 마을 입구에서 세량제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4월 주말에는 주차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세량리 마을 앞을 오가는 버스(177번, 318번)도 있다. 저수지 앞에는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간이식당이 있다. 사진작가가 꼽는 명당자리는 제방의 오른쪽 부근이다. 주말에는 새벽 2시 전에 세량제에 들어야 이 자리를 맡을 수 있다.

 

30년 만에 찾아온 봄 풍경 - 화순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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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은 정자(亭子)의 고장이다. 무등산(1187m)·만연산(609m) 등 호남의 명산이 병풍을 치고, 동복호·지석강 등 물이 휘감아 돌아 화순 땅에는 쉬어 가기 좋은 정자가 많다.

화순이 자랑하는 화순적벽에도 걸출한 정자가 많다. 화순적벽은 지난해 30년 만에 재개방하면서 전국 명소로 떠올랐다. 적벽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노루목적벽(이서적벽)을 마주보는 자리에 놓인 정자가 망향정(望鄕亭)과 망미정(望美亭)이다. 두 정자 모두 역사는 짧다. 1971년과 85년 두 차례 동복댐 공사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당시 13개 마을 580여 가구가 고향을 떠났는데, 수몰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정자가 망향정이다. 망미정은 적벽을 마주보는 둔덕에 있다가, 수몰 전인 83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화순적벽은 100m 높이의 절벽이다. 이 중에서 30m 높이가 저수지가 생기면서 잠겼다. 그래도 저수지 맞은편 정자에서 마주보는 적벽은 웅장하기만 하다. 화순적벽은 겨우내 안전문제로 폐쇄됐다가 지난달 21일 개방됐다. 지난해에 없었던 전망대도 생겼다. 이곳에서 노루목적벽과 망향정이 한 프레임에 담긴다.

화순적벽 상류에 세워진 물염정(勿染亭)도 빠질 수 없다. 김삿갓(1807~63)이 화순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 시를 읊었다는 장소다.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물염정은 주변으로 벚나무가 에워싸고 있어 자체로 멋스럽다. 만개한 벚꽃에 걸쳐 물염적벽의 장쾌한 풍경도 볼 수 있다.

적벽을 벗어나 지석강을 따라가면 경전선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영벽정이 나온다. 영벽정은 기차가 다니는 고가 철교 옆에 있다. 기차에서 보면 정자 옆으로 쭉 뻗은 지석천과 연주산(268m)의 조화가 그저 한 폭의 수채화다. 기차 매니어들이 이 구간을 지날 때마다 차창에 기대 카메라를 드는 이유다. 연둣빛 버들과 연분홍 벚꽃까지 어우러지는 지금이 한 해 중 가장 아름답다.

●여행정보=망향정과 망미정은 화순군청이 운영하는 화순적벽 투어에 참여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화순군청 홈페이지(tour.hwasun.go.kr)에서 예약을 받는다. 주 3회(수·토·일요일)만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하루 384명만 받는다. 탐방일 2주일 전 오전 9시에 예약창이 열리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약 2시간 소요. 5000원. 화순군청 문화관광과 061-379-3501. 영벽정은 경전선 능주역에서 1㎞ 거리에 있다. 물염정은 내비게이션에 검색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산나물 한 입, 봄 한 입 - 산나물 공원


10여 가지 산나물로 가득찬 산채원의 쌈채소와 비빔밥 상차림.

화순의 산 어디를 가나 산나물이 천지라지만, 화순의 봄맛을 제대로 맛보려면 화순 북쪽 끄트머리 백아산(810m)으로 가야 한다. 산자락에 봄의 진미가 기다린다. 200종에 달하는 산나물이 산중턱에 자라고 있다. 이름하여 ‘산채원’이다. 산채원은 김규환(49) 촌장이 일군 30만 평(약 100만㎡) 규모의 산나물 공원이다.

산나물 공원이 아니어도, 백아산은 본래 산나물 천국이다. 산골짜기로 상수원 최상류가 흐르는데다, 기후가 서늘해 산나물이 자생하기에 제격이다. 김 촌장은 전국을 돌며 구한 명품 산나물 씨앗을 백아산 중턱에 뿌렸다. 경기도 가평 유명산, 강원도 인제 방태산 등에서 얻어온 곰취·참나물 등이 백아산 자락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그래도 산나물을 키우는 건 산의 몫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지요. 촌장이 잘해서가 아니라 백아산이 알아서 잘 키워줍니다.”

산나물 200종.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기 전에는 실감이 나지 않는 숫자다. 김 촌장을 따라나서니 그가 산나물을 담을 소쿠리를 내밀며 주의를 준다.

“온통 산나물이니까 요령껏 따봐요. 어허, 지금 곰취를 밟고 있잖아.”


왼쪽부터 두릅 · 돌나물 · 곰취.

요즘 식대로 말하자면 산채원은 ‘공기 반 산나물 반’이다. 오솔길을 따라 제철을 맞은 두릅·머위·산마늘·고춧잎나물·돌나물·취나물·곤드레 등이 지천이다. 오솔길 웅덩이에도 1급수 지표종인 도롱뇽 알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 서울 촌놈은 행여나 파괴자가 되지 않으려 지뢰밭을 걷는 심경이 된다.

“하트 모양 같기도 하고 곰 발바닥 같기도 한 요놈이 곰취고, 저 널찍한 것이 웅녀를 사람으로 만든 산마늘이지요.”

촌장을 따라 산책하듯이 산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소쿠리가 가득 찬다. 산에서 내려오면 김 촌장이 집으로 안내한다. 갓 지은 보리밥 위에 곰취·산마늘·참나물·두릅 따위를 올리고, 집에서 담근 된장을 얹혀 비벼먹는다. 구수한 된장찌개도 빠질 수 없다. 산나물을 찾아 헤맨 짧은 노동의 대가일까, 봄의 찬란한 기운일까. 씁쓸하고도 단맛에 취해 연방 숟가락질을 해댔다.

●여행정보=산채원(010-9043-4549)은 주말에만 운영한다. 예약이 필수다. 김규환 촌장을 따라 백아산을 누비며 산나물을 구경하는 체험이 인기다. 돌아보는데 1시간30분쯤 걸린다. 체험비 1만원. 산나물 한 소쿠리를 뜯는 체험은 2만원. 김 촌장 집에서 곰취·두릅 등 산나물이 들어간 산나물비빔밥(1만5000원)·쌈채소(1만원)를 판다. 산채원에서 23∼26일 산나물 축제가 열린다.

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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