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아이의 마음으로 봄을 즐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2면

땅이 들뜨니 덩달아 마음도 들뜨는 계절입니다. 벌·나비와 경쟁하듯 사람도 꽃을 찾아 나섭니다. 전국이 꽃 몸살을 앓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중년 남자에게 ‘꽃 몸살’은 남의 얘기처럼 들립니다. 여의도에 벚꽃이 만개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구경하러 가야겠다’는 생각보다 ‘그쪽은 피하자’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소녀보다 더 섬세했던 왕년의 감수성은 세월에 닳아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여의도에 있는 동료 기자는 한 술 더 떠 벚꽃이 얼른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상춘객으로 여의도 일대 교통이 마비돼 출퇴근은 물론 취재 나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맞장구를 치고 나니 살짝 우울해 집니다.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마음의 상태를 말한다’(‘청춘’)고 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여든 노인이 스무 살 청년이 될 수도 있고, 스무 살 청년이 여든 노인이 될 수 있다는데, 저는 나이 마흔에 벌써 구순 노인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은 이제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층층나무의 어린 잎입니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의 눈으로 주변을 보니 늘 마주치던 풍경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빛을 받은 작고 여린 잎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신체의 나이는 거꾸로 먹을 수 없지만 마음의 나이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봄, 아이처럼 즐기려 합니다.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