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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항 거리 30분인데 뭘" 트럭 '고박'않고 배가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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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직도 차량을 고정시키지 않는 여객선 이 상당수였다. 지난 11일 전남 진도군 조도를 떠나 진도 팽목항으로 가는 여객선에서는 차량이 고박장치(붉은 원 안)에 묶여 있지 않아 파도가 칠 때마다 흔들렸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11일 오전 9시30분 전남 진도 앞다바의 섬 조도 창유항.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는 조도고속훼리호가 항구를 떠났다. 승객 50여 명과 5t 트럭 2대, 승용차 11대를 싣고서였다. 차량과 승용차는 그냥 갑판에 실었을 뿐, 묶어 고정하지 않았다. 팽목항으로 향하는 배가 흔들릴 때마다 트럭과 승용차 역시 좌우로 흔들렸다.
트럭 옆에 승용차를 세운 승객 김선진(46)씨는 “내 차 30㎝ 옆에 있는 트럭이 흔들리다 쓰러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왜 안전규정을 어기고 차량을 고정시키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승무원은 “운항 거리가 30분밖에 되지 않아서…”라고 얼버무렸다.

 세월호 사고가 난 지 1년. 여객선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차량을 바닥에 단단히 묶어 놓지(고박) 않았고, 구명조끼 같은 안전장비 사용설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도고속훼리호가 창유항을 출발한 직후 선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를 통해 구명조끼 사용법이 방영됐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승객들은 아무도 안전장구 사용법 방송에 주목하지 않았다. 지난 12일 300여 명을 태우고 전남 완도를 출발해 청산도로 가는 대흥 카페리에서는 아예 구명조끼 사용법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초기 탑승객 신원과 숫자가 확인되지 않아 혼란을 겪었건만, 지금도 탑승 전 신원 확인을 설렁설렁 하는 곳이 있었다. 지난 9일 신안군 안좌도에서 목포로 가는 안좌농협카페리가 그랬다. 매표구에서 40대 승객이 신분증을 제시한 뒤 표를 끊고 “일행이 있는데 화장실에 갔다”고 하자 신분증 확인 없이 그냥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불러달라”고만 했다.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자 매표원은 “원래 신분증을 확인해야 하는데 출발이 5분밖에 남지 않아 그냥 주겠다”고 했다. 표를 받은 승객은 “주민등록번호를 몰라 대충 불러줬다”고 했다. 신원 불명의 탑승객이 생긴 셈이다. 안좌농협카페리는 또 승객 전화번호를 확인해 탑승권에 적어야 하지만 번호를 묻지 않고 그냥 ‘010’ 또는 ‘0’이라고만 기록했다.

 지난 1일 오후 7시 승객 79명과 승용차 57대, 화물 533t을 싣고 부산항에서 제주항으로 출발한 서경파라다이스호는 신원 확인과 비상시 행동요령 안내방송 등을 규정에 따라 정확히 했다. 하지만 승객들이 안내를 외면했다. 모니터에서 구명조끼 입는 방법이 나오는 동안 승객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일부는 편의점에서 술을 사와 식당칸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승무원이 “안내방송을 보시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구명동의 입을 일이 생기겠느냐”며 손사래 치는 승객도 있었다. 서경파라다이스호 이남선(56) 사무장은 “안전수칙을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승객들이 귀찮다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강제로 설명을 듣도록 할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진도·신안=최경호·김호 기자 부산=차상은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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