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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서른 살, 그 지성의 나이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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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학과지성사'가 12일로 창사 30주년을 맞는다. 한 출판사의 사사(社史)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 본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른바 근대성(Modernity)은 두 개의 명사 없이는 설명이 곤란하다고. 그 하나가 새마을 운동이고 다른 하나가 세칭 '문지'라 불리는 이 출판사라고. 다시 말해 '문지'로 대표되는 어떠한 정신 또는 주의(主義)라고.

문지는 서른 살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사사 단행본 '문학과지성사 30년, 1975~2005'를 펴냈고, 9일 오후 6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창사 30주년 행사를 연다. 행사도 뜻 깊지만 사사도 의의가 크다. 이른바 '문지 식구' 대부분이 출연해 문지 30년을 증언한다. 김주연.김치수.정현종.황동규.이인성.김명인.정과리.이광호 등 필진 34명이 참여했다. 이를 토대로 문지 30년을 되짚는다.

◆ '문지'라는 역사=1975년 어느 여름날. 서울 청진동 골목을 사흘째 헤매던 30대 사내 둘은 독일 유학에서 막 돌아온 김주연과 동아일보 해직기자 김병익이었다. 둘은 걷기를 싫어하지만 출판사 사무실을 빌리려 걷고 또 걸었다. 끝내 김병익은 투덜댔다. "회사 안 하면 안 될까. 솔직히 난 별로인데…."

그리고 12월 12일. 청진동 3-3번지 2층에 문학과지성사 간판이 걸린다. 출판사 열화당과 함께 20평 사무실을 나눠 썼다. 사무실을 빌린 건 김주연과 김병익이었지만 처음 뜻을 세운 건 고 김현(1942~90)이었다. 고인은 나머지 '3K'를 포섭해 '4K'신화를 건설한다. 김현.김주연.김병익.김치수, 네명의 김씨 평론가로부터 역사는 시작됐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문지도 전사(前史)가 있다. 출판사 문지가 있기 전, 계간지 '문지'가 있었다. 이미 70년부터 출간되고 있었다. 66년 출간된 '창작과비평'이 군사정권과 사상 논쟁을 벌이자 문지 1세대는 소위 문학적 자율성을 앞세운 계간지 문지를 펴내 새로운 전선을 형성했다. 출판사 '일조각'에서 발행되던 계간지를 출판사 문지가 인수한 건 77년. 문지 체제가 완성된 시점이다.

◆ '동인'이라는 시스템=문지를 알기 위해선 하나의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동인'체제다. '창비가 1인 지도체제이라면 문지는 공동 협의체다'(김주연). 문지에 관한 모든 일을 편집 동인이 합의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문지는 폐쇄적이라는 비난도 종종 듣는다. 의사 결정이 늦고 울타리가 높기 때문이다. 이건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글을 쓰는 세대가 문학적 자율성이라는 뜻을 함께해' 문지가 출범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해 '귀족적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던 이러한 문제가 사실은 가장 민주적인 절차의 결과'(김주연)라고 문지 측은 항변한다.

세월이 흐른 만큼 동인의 얼굴도 변화했다. 유신시대가 1세대의 시절이라면, 문지가 강제 폐간되고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으로 명맥을 잇던 80년대는 2세대의 나날이었다. 이어 계간지 '문지'가 '문학과 사회'로 바뀌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3세대가 전면에 나선 상태다. 하나 전통은 여전하다. 매주 목요일 문지 사무실에 모이던 동인은 요즘엔 요일을 바꿔 '금요회'로 이어졌다.

◆ 한국 현대 시와'문지 시인선'=문지 동인은 평론가로 구성되지만 문지에겐 '시인 공화국'이란 칭호가 따라다닌다. 이유는 분명하다. '현재 우리 시단의 대표 시인들이 '문지'출신이다'(김주연). 이 신화를 생산한 지면이 '문지 시인선'이다.

출발은 78년 황동규의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이었다. 이후로 숱한 화제작을 양산하며 올 7월 시리즈는 300호를 넘겼고 최신 호인 311호는 지난달 말 출간된 장석원의 '아나키스트'다. 한 출판사의 시집 시리즈로 최다 기록이다.

그동안 문지 시선은 한국 현대 시를 선도했다. 정현종.황동규.오규원.마종기.최하림.김명인.김광규.이성복.황지우.김혜순.박남철.최승호.송재학.기형도.황인숙.유하.장석남.김중식 등에 이르기까지 '문지 시인선'은 늘 새로운 감수성을 선보였고 문단과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 태동부터 고수한 원칙, 즉 문학적 자율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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