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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객원칼럼|미국 신보수주의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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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간단하고 단순한 인간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에도 미국사회는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사회구성에다가 역사적 조명이 불가능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다른 나라보다 한 걸음 앞서 이곳에 일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를 달리하는 끈길긴 경쟁을 거쳐 실용주의적이고 임시적인 타령을 꾀하는 유동성도 미국사의 원리나 구조를 알기 어렵게 만든다.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면 미국은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미국을 얘기하려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일면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그때그때에 두드러지는 부분적 현상을 단편적으로 관찰 하는것은 힘들지 않다. 이런 관찰이 무슨 의미나 가치가 있는지는 물론 미심쩍다.
요즈음 필자의 관심을 끄는 현상은 소위 신보수주의자로 일컬어지는 한 무리의 지식인들이 지난 10여년 동안 계속 그 편향력을 키워와서 미국의 전통적 보수주의 세력에 새로운 힘을 주고 지성적 정당화에 크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있을듯한 인물만 꼽자면 「대니얼·벨」 「어빙· 크리스서」 「대니얼·모이니핸」상원의원 「네이선·글레이저닉」 「S·M·림세튼 「새뮤얼·번팅턴」 등이 있고 이물에 동조하는 이름있는 학자·언론인이 수십명이 활약하고 있다. 명문대학들의 교수직, 소위 「지식탱크」의 연구원, 퍼블릭 인터레스트·코먼터리 등 잡지의 편집인으로 있으면서 이들은 워싱턴정가에 접근, 정책결정에 자문하고 여론을 이끌어간다. 그들의 기본적 입장은 무엇이고 「크리스용」은 신보수주의자들이 대체로 다섯가지 점에 합의한다고 본다. 복지사회의 이념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위대한 사회적 복지에는 반대한다. 관료적 제도에 반대하고 시장의 기능을 극대화시킨다. 미국의 전통적 가치·제도·종교·가족·서양문명의 고급문화를 존중하고 60년대에 대두한 반문화를 배격한다. 기회의 평등은 긍정하나 모든것을 고루 나누어 갖자는 결과의 평등은 자유를 위협하므로 배격한다.
외교정책에서 고립주의를 배격하고 소련과의 화해도 견제한다. 다서 말해서 미국의 전통적 보수주의와 신보수주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구태여 자기들의 보수주의를 새롭다고 하는 것은 이들 나름의 현실분석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우선 미국과 서구에서 권위가 위기에 처한 것을 걱정한다. 정치체제는 정당성을 잃었고 지도층의 자기확신도 망가졌다. 사회적 안정과 자유주의 문명유산이 위협받고 있다.
둘째로 이들은 오늘날의 위기가 무엇보다도 문화적 위기라고 본다. 가치의 상실, 도덕과 미풍양속의 타락이 사회경제체제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미국의 체제가 잘못됐다거나 지도층 엘리트에 책임을 묻는것을 이들은 일체 배격한다. 심지어는 인종분규, 월남전쟁 같은 미국사회를 멸망시킨 역사사건들 조차 미국의 체제나 지도층고 무관하다고 한다. 오히려 정부가 너무나 크고도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그 권위를 잃을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 이들이 세번째로 지적하는 점이다. 지나친 민주주의와 복지가 국가와 사회를 거덜나게 한다는 주장이다. 체제의 과도층 현상이 생긴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터무니없는 낙관주의와 자신감 교만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하층민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고 하며 하층민의 행태에 생리적 유전학적 근거가 있지 않은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조차 있다. 과도충전의 또 하나의 원인은 지나친 평등에대한 요구라고 한다. 법적 정치적 평등에 만족할 것이지 사회적 경제적 평등이란 도대체 언어 도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신보수주의자들은 간단한 전략을 제시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를 보호해야 하고 권위를 다시 옹호해야 된다고 한다.
국민들은 욕구와 기대를 크게 갖지 않도록 새로 훈련되어야 하고 특히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새로운 사회계급, 중대한 결정을 하는 입장에 있는 새로운 엘리트를 다시 길들이고 이들의 반체제유지적 문화를 깨뜨려야 한다.
반대파의 이데올로기를 공략하기 위해서 그것이 논리적으로 어떠한 극단으로 빠지게 되어있나를 폭로한다.
미국의 비판은 반미주의로, 빈곤구제정책은 약탈 등의 범죄로, 정부통제는 전체주의로, 국방비 지출의 비판은 공산주의에의 굴복으로, 여성해방은 가정의 파괴로, 좌익세력은 테러와 반유대주의·파시즘으로 각각 연결시켜 공격한다. 대학과 예술계에서 시작하여 정부기관 정치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감상적 인도주의와 죄의식을 가진 자유주의자들을 공략한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불안정한 국제정세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의 위협과 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제3세계에 대한 경각심을 고조시키면서 국민의 충성심을 일으키려 노력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냉전의 열렬한 반공투사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중동의 동 키프르전쟁,산유국들의 성공적인 카르텔, 월남전의 파국적 결과 등에 크게 쇼크를 받고 미국인의 비판세력을 공격하는 동시에 외국의 적을 찾아 공격하는 이와 같은 모임에서 신보수주의적 국제정세분석을 한다. 미국·유럽·일본이 더욱 긴밀하게 협조해서 세계질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민주적 통치의 자유성」용 연구한다. 「카터」 대통령과 「부시」 부통령이 이 모임에 참여했었다. 「대니얼·밸」은 미국의 지배계급의 약화를 개탄하고 「크리스」는 온 세계제국이 그 힘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려면 대내적인 사회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우성치며 날뛰는가? 신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입장이 달라진 상황에 맞도록 약간 수정된 자유주의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씨가 좀 먹히지 않는 것 같다. 과격 학생운동이 사라진지 오래고 반문화문 등도 식었는데 이들은 문화의 위기와 공산주의의 음모를 도처에서 찾아내는 모양이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애써서 얻은 특권을 잃을까봐 히스테리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꾀를 다 짜내서 기존 질서 유지에 골몰한다고 비난한다.
「이시도어 실버」는 이들을 반유대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시킨다. 유대인 지식인이 주력을 이루는 이 그룹은 유럽에서 범슬라브주의 범독일주의 대중운동이 유대인의 대학살로 치달았던 것에 몸서리를 친다. 유대인을 보호했던 것은 강력한 국가와 지배엘리트인데 이것이 약화되자 민족주의를 내건 대중운동이 전체주의 반유대주의로 전개되고 말았다는 역사적 경험이 이들 보수주의자로 하여금 민중을 불신, 권위에 아부 집착하게 만든다고 한다.
유대인 지식인 모두가 신보수주의자도 아니고 이들의 모두가 유대인도 아닌 이상, 이 설정도 일면성을 벗어날 수 없으나 흥미있는 관찰임에는 틀림없다.
하여튼 노동윤리의 약화, 퇴폐적 쾌락의 추구,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의 모든 성스러움을 상실한 도덕적 타락 등을 개탄하는 이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수긍이 가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욕구와 기대의 인플레이션, 복종심의 상실로 미국이 통치 불가능한 상태로 가고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이 문제를 일종의 보수적문화 반혁명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더구나 난센스라고 보여진다. 그보다는 현재의 경제회복에도 불구하고 1천만의 실업자를 그대로 안고있는 현실을 더 깊이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옳은 길이라고 생각된다.
60년대의 질풍노도가 지나친 점이 있었고 그 부작용도 작지 않았으나 오늘의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 부모의 세대에 비하여 인종적 편견이 덜하고 남녀의 성차별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며 전쟁을 싫어하고 고통에 더 민감한 점에서 도덕적으로 더 우윌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자본투자율의 저하로 생산성이 오르지 않고, 자본의 해외투자로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거론하지 않고, 독선적 도덕설교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하는 동시에 권위와 질서라는 고물이데올로기로 추앙하는 이들의 냉소주의는 실소를 자아낸다.
필자의 비위를 특히 거술리는 것은 이들의 제3세계에 대한 멸시다. 구미 각국의 이데올로기정치의 종언을 선언하더니 제3세계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적극 지원 지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민족주의건 반공주의건 우리가 알아서 할 터이니 주제넘는 소리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미국 최고의 대학들에 와서 이들 신보수주의자들 밑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들어가서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닐까 생각을 하니 우울해진다. 서구 특히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아래 학문적 사상적 식민지상태에서 방황했던 우리 기성세대에 비해서 젊은이들은 훨씬 더 독립자주의 정신이 강하리라고 믿고 싶다. <김상기, 미 남일리노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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