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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시장 불확실성 키우는 한국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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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민근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9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내수가 개선된다는 표현을 금리 인하 신호로 보는 건… 정말, 뭐라고 하나요. 기이(奇異)하다고 합니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 9일. 기자간담회에 나선 이주열 총재의 표정에 한순간 당혹감이 스쳤다. 그를 당황하게 만든 질문의 내용은 이랬다. “통화정책 방향 발표문에 ‘내수가 개선되는 모습을 나타냈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지난해 9월에도 같은 문구가 나온 뒤 다음달 금리를 내렸다. 이번에도 인하 신호로 봐야 하나.”

 한은이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면 향후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최소한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이 총재가 ‘기이하다’고 한 건 그래서다. 물론 질문을 한 기자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오히려 기자의 질문은 종잡을 수 없는 한은의 행보에 대한 ‘야유’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총재 취임 이후 ‘금리 깜빡이’가 제대로 작동된 적이 별로 없다. 신호와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꺾거나 깜빡이도 안 켜고 차선을 옮기는 일이 반복됐다. 한은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경제주체들은 당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한은이 가리키는 방향과 시장이 반대로 움직이기 일쑤다. 9일 이 총재는 “현재 금리는 경기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며 추가 인하 기대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날 국고채(3년물) 금리는 1.6%대까지 떨어졌다.

 한은이 못 미더우니 다른 신호를 주시하기도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다. 한 채권 분석가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금리 인하 압박이 나올 때마다 한은은 금리를 내렸다”며 “인하 신호는 없었지만 추가 인하 기대를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코멘트를 달았다.

 한은이 신뢰를 잃은 건 소통에서만이 아니다. 이날 한은은 올 경제성장률을 3.1%, 소비자물가상승률을 0.9%로 전망했다. 연초 전망치(성장률 3.4%, 물가상승률 1.9%)를 확 후려쳤다. 물론 전망이 매번 맞을 수는 없다. 그러나 수년 동안 한 방향으로만 빗나가고 있다면 한은의 경기 전망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가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가장 큰 적으로 불확실성을 꼽는다. 경기가 어떤 방향을 향할지, 금리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비와 투자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주요 중앙은행들은 이런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려 파격적 조치를 동원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수년 앞의 금리 방향까지 제시하는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안내)’가 대표적이다. 돈 한 푼 안 쓰고 ‘입’으로 통화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지금 한은은 거꾸로다. 수차례 금리를 내리고도 입으로 그 효과를 까먹고 있다.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