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의 바다는 탁했다 … 그날 이후에도 우리가 탁하듯

중앙선데이

입력 2015.04.11 23:26

지면보기

422호 01면

지난 4월 6일, 팽목항엔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1년 전만 해도 선착장에까지 천막이 들어서 인근 섬 지역을 오가는 여객선이 접안조차 못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팽목이라는 이름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간 듯 보였다. 그러나 한쪽의 임시주택들과 분향소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고서야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은 부활절 다음날 팽목항으로 ‘부활 엠마오’를 온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들이었다. 엠마오란 예수가 죽은 뒤 절망과 혼돈 속에서 예루살렘을 떠난 두 사람이 찾아간 인근의 마을이다. 예수의 죽음과 세상의 잔인함을 목격한 두 사람의 마음은 어둡고도 차가웠으리라.

세월호 1년 작가 김연수가 찾은 아픔의 현장

그 마음처럼 분향소 옆, 사방연속무늬처럼 흔들리는 팽목의 바다는 파도에 일어난 개흙들로 한 치 앞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했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후 1년, 한국 사회의 절망과 혼돈을 바다는 고스란히 되비추고 있었다. 사실과 사실이 서로 부딪히며 또 다른 의견을 낳았고, 이는 주장이 되어 다시 밀려가다 상반된 주장을 만나 맥없이 흩어졌다. 실로 사실과 의견과 주장의 삼각파도 속에서 속절없이 세월만 보낸 1년이 아닐 수 없다. 팽목의 바다를 바라보며, 과연 우리에게도 환한 미래가 있을지 적잖이 의심스러웠다. 마치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사람처럼.

물밑의 객실 고통스레 직시했던 4월 16일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 속보를 접하며 아침을 맞이한 뒤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희소식과, 하지만 그것은 오보였다는 뒤이은 비보에 혼란스러운 오후를 보내고야 거꾸로 뒤집힌 여객선의 진실을 직시하는 밤을 맞이했다. TV 화면으로 보이는 것은 선수 끝뿐이었지만 우리가 마음으로 보는 것은 물에 잠긴 객실이었으니, 그것은 고통스러운 직시였다. 마찬가지로 가라앉은 건 채산성을 높이기 위해 과적한 뒤 평형수를 뺀 위태로운 여객선이었지만 우리 마음속에서는 한국 사회가 침몰했다.

불의의 사고는 인과율에 따라서 흐르던 시간을 단절시킨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뜻밖의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의 삶을 다룬다. 가벼운 접촉사고라 당연히 깨어날 것으로 여겼던 아이가 죽은 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이제 그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이 준엄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련의 지극히 고통스럽고 잔인한 과정을 일컫는다. 그건 원하지 않는 삶으로의 환생 같은 것이라,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의 여생을 이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쇼크, 부인, 분노, 회상과 우울증, 용서와 수용, 재출발의 단계를 밟는다는 것은 그간의 대형 참사 유가족에 대한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지켜본 것과 같이 세월호의 침몰은 개인적 사건이 아니다. 6·25, 4·19, 5·16, 7·4, 10·26, 5·18, 6·10 등의 날짜들과 다르지 않은 의미가 4월 16일에 부여됐고, 세월호 사건을 해상 교통사고에 불과하다고 강변한들 이 의미는 지워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유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 역시 강제적으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의 극심한 갈등과 혼란은 이해관계가 서로 상반된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쇼크, 부인, 분노, 회상과 우울증이라는 단계들을 밟는 과정에서 생성된 삼각파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용서와 수용으로 가는 첫 단계는 진상 규명
이 사회적 삼각파도 속에 휩쓸려 보낸 지난 1년의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후의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여전히 4월 16일 오전 8시52분 119에 최초로 신고가 접수된 시간부터 단원고 학생에 의해 마지막 카톡 메시지가 발신된 오전 10시17분 사이의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내가 팽목의 혼탁한 바다를 내려다보던 그 시각까지도 이 사건에 의미를 부여해 세월호 이후로 나아가려는 힘과 이 사건을 단순한 해상 교통사고로 여겨 세월호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는 힘은 여전히 길항하고 있었다. 지난 1년, 이처럼 쇼크, 부인, 분노, 회상과 우울증의 단계를 밟았다면 이제는 사회적으로 용서와 수용, 재출발의 단계로 나아가는 게 마땅하다. 그 첫 단계는 진상 규명이다.

▶관계기사 6~12면

진도(팽목항)=김연수 작가 writerkys@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