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의 대선자금 수사 시작되나 … 김진태의 칼끝 주시

중앙선데이

입력 2015.04.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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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03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당 실세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메모가 공개된 9일 오후 김진태 검찰총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검찰의 칼날은 2012년을 향할까. 지난 9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55자(字)의 메모가 검찰의 칼끝을 돌려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김진태 검찰총장이 전임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이어 2012년 대통령선거의 늪에 빠졌다”는 말이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 정국 강타] 고민 깊어지는 검찰

박근혜 정부의 첫 검찰총장이던 채 전 총장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다 혼외자(婚外子) 논란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취임 후 첫 대형 수사로 이명박(MB) 정부의 자원외교를 겨냥한 김 총장 역시 의도하지 않게 2012년 대선과 관련한 의혹과 맞닥뜨렸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서 가장 휘발성이 강한 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부분이다. 2003년 이후 12년 만에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에 나설 수도 있는 대목이다.

복병 만난 기업비리·자원외교 수사
성 전 회장에 대한 수사는 당초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의혹을 겨냥한 것이었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이번 정권 초기부터 자원외교 의혹과 관련한 첩보를 수집해 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을 출범시켰던 검찰은 지난달 12일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정부패와의 전면전’ 선언 다음날,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포스코건설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사정 정국’을 예고했다. 일주일이 지난 18일에는 특수1부가 경남기업과 한국석유공사를 압수수색하면서 대기업 비리·자원외교 의혹에 대한 ‘투 트랙(two track)’ 수사에 나섰다.

성 전 회장이 받고 있던 혐의는 크게 세 갈래다. 우선 한국광물자원공사의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컨소시엄에서의 특혜 의혹이다. 경남기업이 자금난으로 내지 못한 사업비를 2009년 광물공사가 대납해 줬고 이듬해에는 지분을 비싸게 사들여 116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러시아 유전개발사업과 관련해 300억원대 성공불융자금을 횡령하고 2008~2013년 9500억원대 분식회계를 벌인 혐의도 받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숨지기 하루 전인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성공불융자금은 총사업비를 선집행한 뒤 집행 내역을 근거로 주관사에 신청하는 방식이어서 사적 유용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성공불융자금은 해외자원개발에 참여한 기업은 모두 신청할 수 있어 특혜로 보기 어렵고 상당 부분의 자금을 자체 조달해 경남기업도 큰 손실을 봤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날 “나는 MB맨이 아니다”며 검찰의 ‘표적수사’ 의혹도 제기했다. 검찰이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수사하면서 자신을 MB맨으로 간주해 직접 겨냥했다는 것이다.

검찰 “성 전 회장 표적수사 아니다”
검찰은 이 같은 주장을 전면 부인한다. 수사팀 고위 관계자는 “사람을 보고 수사한 게 아니다”며 “성공불융자금을 받은 기업 가운데 실제 자원개발사업에 돈을 사용했는지, 유용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 끝에 수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 전 회장의 사망으로 경남기업 수사를 자원외교 전반으로 확대하려던 검찰의 계획은 일단 제동이 걸렸다. 예상치 않은 ‘성완종 리스트’의 등장으로 수사 초점을 ‘불법 정치자금 수사’로 전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할지, 하게 된다면 어디서 맡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경남기업 수사를 해 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피의자 사망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해당 수사를 맡기엔 부담스럽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검찰은 일단 신중한 반응이다. 김진태 총장은 10일 오후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3차장검사를 불러 “메모(성완종 리스트)의 작성 경위를 밝히고 법리를 검토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최 차장검사는 11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론 관련자를 불러 조사할 상황은 아니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로 봐 달라”고 말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의 필적을 감정하는 한편 성 전 회장이 갖고 있던 2개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 등에 대한 분석에 착수했다.

이번 수사가 청와대 의중에 따라 진행됐다는 세간의 시각도 검찰로선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특수수사 전문가’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취임 이후 이렇다 할 대형 수사를 지휘하지 않았던 김 총장으로선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2013년 김 총장 “비난 받은 적 별로 없다”
김 총장은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이면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인물로 통한다. 종교학자 수준의 불교지식에 주역과 동양철학에도 능통하다. 사법연수원 동기(14기)인 채동욱 전 총장이 특유의 감(感)과 추진력을 갖춘 특수부 검사였다면 김 총장은 자금 추적이나 회계분석과 같이 분석적인 수사에 능했다. 검찰 내에서 ‘깐깐한 선배, 까칠한 후배’로 불렸지만 그를 밑에 뒀던 김종빈 전 검찰총장, 박만 전 대검 수사기획관 등은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건이라 해도 일을 맡기면 뒤탈이 없는 검사”라고 평가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는 단 55자. 12년 만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정국이 시작될지, 세간의 의혹만 남긴 채 잊힐지는 김 총장의 판단에 달렸다. 검사 경력 30년 만에 가장 중대한 기로에 선 것이다.

김 총장은 검찰총장 권한대행 시절인 2013년 동기인 채 전 총장과의 검찰총장 경쟁에서 탈락한 뒤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e-pros)’에 올린 사직의 변에서 이렇게 적었다.

“상대방이 생명을 버리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비난을 받은 적은 별로 기억에 없어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나 사회적으로 크게 비판받은 몇몇 사건에 관여하지 않은 것을 옹졸한 이기심이라고 비판할지는 모르겠지만 홍복(洪福·큰 행복)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 총장의 남은 임기는 불과 8개월. 임기 2년을 마친 검찰총장은 2007년 정상명 전 총장이 마지막이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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