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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어도 봄은 멀다 … 진상은 가라앉고 현상만 드러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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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422호 08면

지난겨울은 너무나 추워서 이불에서 나올 수조차 없었다고 올해 예순둘의 권오복씨는 말했다. 세월호 사고로 동생 일가족을 잃은 그는 1년째 팽목항에 머물며 실종 상태인 남동생 권재근씨와 조카 권혁규군의 시신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베트남 출신의 아내와 함께 다문화가정을 이룬 권재근씨네는 제주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 세월호에 올랐으나, 침몰 초기 우리가 여러 차례 화면으로 구조되는 모습을 본 바 있는, 어린 딸만 살아 돌아왔다.

작가 김연수가 팽목항에서 돌아본 1년

해서 팽목항까지 가는 도로 연변에는 벚꽃들이 만발했지만, 그에게 아직도 봄은 먼 이야기다. 방파제를 따라 노란 깃발이 그려진 빨간 등대까지 걸어가노라면, 그 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철제 난간에 매단 노란색 플래카드와 리본은 해풍 앞에서 곧 찢어질 것처럼 흔들린다. 거기 등대 아래에 서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지금이 과연 봄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팽목항 등대 아래에서 불현듯 솟구치는 이 의심은 지난 1년간 유가족들이 느꼈던 감정과 흡사할 것 같다. 2학년 8반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인 이지연씨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팽목항에서의 기다림은 어두움의 기다림이에요”라고 말했다. 왜 어두운가 하면, 그들이 원하는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7일 팽목항 방파제. 해풍에 날리는 노란 추모리본을 따라 걸으며 작가 김연수는 “세월호는 신뢰의 침몰”이라고 했다. 팽목항=김춘식 기자

재출발 전제는 그때와 달라졌다는 확신
진상 규명이라는 것은 세월호는 왜 넘어갔으며, 어째서 퇴선 명령은 끝내 내려지지 않았으며, 어떻게 객실 내에서 대기하던 승객은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는가의 이유를 철저히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가족이 죽었는지를 아는 것은 용서와 수용의 전제 조건이며, 진상 규명을 통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바뀌게 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재출발의 전제 조건이다. 이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극심한 갈등을 겪은 우리 사회에도 적절한 처방이다.

2014년 11월 11일 1심 재판부는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징역 5년에서 징역 36년에 처하면서 침몰 원인을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증개축으로 복원성이 약해진 배에 화물 최대 적재량 기준을 어기고 과적해 복원성을 더욱 약화시킨 뒤, 고박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주의해야 할 맹골수도에서 우현으로 대각도 조타를 하는 과실을 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초기에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세월호의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들이 승객의 안전한 퇴선을 위한 조치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가 먼저 퇴선했으며, 구조에 나선 해경 123정의 정장 김경일 역시 대공 마이크 등으로 퇴선을 유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여기까지가 세월호 재판에서 재판부가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사실로 판단한 진상의 전부다. 방금 진상이라고 말했으나, 법정에서는 드러난 사실과 의견들의 위법성 유무만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는 진상이라기보다 현상에 가깝다. 진상과 현상의 차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2014년 4월 16일 밤, 우리가 TV를 통해 본 화면을 떠올리는 게 좋겠다.

화면에는 침몰된 세월호의 선수 끝만 간신히 보였지만, 말했다시피 우리는 그 부분을 본 게 아니다. 우리는 바다에 가라앉은 선체를 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월호를 둘러싼 사고 전개 과정에서도 드러난 현상만이 아니라 가라앉은 진상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세월호 재판 과정을 통해 우리는 드러난 의혹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는 현상 아래 가라앉은 부분에 대해 좀 더 따져봐야만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적 책임 외에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묻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걸 비용으로 환산하려는 우리 사회
그날, 팽목항으로 내려가던 자동차 안에서 나는 해양수산부 유기준 장관이 세월호 인양 여부를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자고 말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나중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그는 해명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인양 문제를 여론에 묻겠다고 장관이 고려했다면, 그건 아마도 국민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체감할 인양 비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을 둘러싸고 지난 1년간 벌어졌던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그에 따른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따져본다면 과연 인양에 들어가는 금액을 비용으로만 보는 게 타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젠 다들 알다시피 애당초 세월호는 운항할 수 없는 배였다. 2009년 해운법 시행 규칙을 개정하지 않았다면 선령 20년째가 되던 2013년에 운항을 중단해야만 했다. 재판 과정에선 청해진해운으로서도 세월호 도입은 실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대표이사였던 김한식은 세월호 도입으로 발생한 비용을 여객과 화물에서 충당하고자 배의 증축 및 수리를 지시했다. 그 결과 복원성이 나빠지면서 적재 가능한 화물량이 기존의 2525t에서 1077t으로 줄어들었다. 이 의외의 결과를 두고 대책회의를 한 끝에 청해진해운 측은 수익을 내기 위해선 복원성 기준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평형수를 비용으로, 화물을 수익으로 계산했다. 비용을 줄이는 것은 간단했다. 평형수를 빼면 되는 일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아니었다면, 내가 배에 평형수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배에 올라탈 때마다 직접 평형수를 점검할 수는 없으니 선사 측을 믿어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평형수는 비용이 아니라 신뢰를 뜻한다.

이 신뢰를 비용으로 여겨 줄이려는 노력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세월호로 경제가 위축됐다고 말할 때, 세월호를 둘러싼 치유 과정은 오직 경제에 타격을 주는 돌발적인 비용으로만 여겨진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금 지급에 반대한다고 시위할 때, 그들의 슬픔과 생계지원은 국가의 비용이 된다. 급기야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따져봄으로써 또 다른 세월호 사고를 방지하고자 출범할 세월호 진상규명특위를 두고 세금도둑이라고 확신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모든 것을 비용으로 환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청해진해운은 얼마나 많은 수익을 창출했는가? 이 일로 유병언은 변사체로 발견됐으며, 아들 유대균은 구속됐고 딸 유섬나는 프랑스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상태다. 대표이사인 김한식을 비롯한 임직원 7명은 최고 징역 10년에 이르는 형을 받았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는 데 드는 총비용을 5548억원으로 추정하는데,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일가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계획으로 지난 3월 말 기준 1281억원의 재산을 동결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116억원에 사들였는데, 산업은행이 지불한 금액을 빼고 자체적으로 지불한 돈은 고작 16억원이다. 구상권 청구액으로 세월호 같은 배를 사들였다면, 청해진해운은 347척의 여객선을 소유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 마음에 빛이 되면 좋겠어요”
그들의 눈물겨운 비용 절감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이솝우화에나 실릴 만한 이야기다.

이런 우화를 현실에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대신 우화 같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앞에서 말한 이지연씨는 아무리 어둡더라도, 또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한다. 대신에 그동안 뭔가를 하고 싶은데, 일부 사람이 걱정하듯이 ‘떼를 쓰거나’ 하는 일은 아니다. 10년 정도 하다 몸이 아파서 그만둔 서예를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목이 아팠는데, 이상하게도 4월 16일 이후로 전혀 아프지 않아 아들이 엄마를 많이 사랑해서 엄마 병을 가져갔나 보다는 말까지 들었다.

어두움 속에서 기다리며 이지연씨는 이렇게 말한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붓놀림 같은 것들이 눈에 삼삼해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다른 사람들 마음에 큰 빛이 되면 참 좋겠구나, 밝은 빛이 되면 참 좋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팽목에서의 이튿날은 날이 개어 봄 햇살이 따뜻했다. 진상 규명이란, 어쩌면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원래의 밝은 빛으로 이끄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일이야말로 지난 1년 국가적 참사 앞에서 극심하게 양분됐던 우리 사회를 용서와 수용, 재출발로 이끄는 첫걸음이 아닐 수 없다.

김연수 작가 writerky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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