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유족들 “모두 소중한 생명인데 우리는 잊혀져 … ”

중앙선데이

입력 2015.04.1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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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10면

조요셉(8)군이 지난 9일 홀로 피아노학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최정동 기자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피아노학원. ‘미미파솔 솔파미레~’ 조요셉(8)군이 고사리손을 분주히 놀리자 피아노에선 베토벤 교항곡 9번 ‘합창’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요셉이는 피아노를 배운 지 한 달 된 초보. 멜로디만 칠 줄 알지만 악보를 넘기는 손길도, 건반을 두드리는 손끝도 과감하고 거침이 없다. “서툴긴 해도 박자감과 음감이 좋아 잘 따라온다”고 류은경(43·여) 원장은 칭찬한다. “항상 활달하고 친구들한테 참견도 많이 해요. 집에 갈 때는 그냥 나가지 않고 문을 수차례 여닫으며 아는 체할 때까지 우렁차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해요.”

[세월호 1년] 또 다른 아픔

두꺼운 안경 너머로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 초롱초롱한 개구쟁이 요셉. 그런 아이에게도 아픔과 상처가 있다. 요셉이는 세월호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 엄마·아빠·형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가 혼자 살아남았다.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고 3개월 동안 외래 진료를 받았다. “형아는 6학년인데, 같이 놀면 참 재밌는데….” 요셉이는 말끝을 흐렸다. 울상이 되는가 싶더니 “그래도 친구가 많아요”라며 금세 밝아졌다.

요셉이는 슬픔을 극복한 걸까. 상처가 씻은 듯 잊힐 리 없다. 대신 너무 빨리 어른이 됐다. 슬픔을 억누르고 감정을 숨기며 사는 법을 알아버린 것이다. 가족들은 요셉이가 깊은 슬픔을 쾌활함으로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요셉이를 맡아 기르고 있는 외삼촌 지성진(47)씨는 “친구도 금방 사귀고 잘 노는 것 같아 다행”이라면서도 “천진난만한 것 같지만 잘 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잘못하는 게 있어도 나무라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씨는 “요셉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려 했더니 ‘배 타고 가면 안 갈 거야’라고 응석을 부려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세월호 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17세 꽃다운 나이의 청춘 250명이다. 반면 일반인 희생자는 43명으로 수가 적다. 환갑여행을 가던 초등학교(용유초) 동창회, 사이클 동호회, 일반 가족 등 나이와 사연도 제각각이다. 슬픔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다면 어떨까. 희생자 수가 적거나 나이가 많다고 남겨진 가족의 슬픔이 덜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일반인 유가족의 심정은 비통하다. 이들은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장소에서 희생을 당했는데도 일반인 희생자는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배려와 지원 적어 더 우울
요셉이 외삼촌 지씨는 정부의 배려와 지원이 안산에만 집중되고 있다고 말한다. 단원고 학생들에게는 대학 특례입학 혜택을 주면서 정작 부모를 잃은 일반인 가족 자녀들은 그런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요셉이나 권지현(6)양이 대학을 갈 때 특례 대상이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지씨는 “어떤 아픔이 더 큰 지 비교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혜택이 그쪽으로 몰리는 특별법은 ‘세월호특별법’이 아니라 ‘단원고 특별법’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현이는 제주도로 이사 가는 길에 부모와 오빠를 잃고 구조돼 친척집에서 산다. 아버지 권재근(52)씨와 오빠 혁규(7)는 실종 상태다. 권재근씨의 형 오복(60)씨는 지금도 진도 팽목항에서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고 있다.

많은 일반인 유가족은 1년간 줄곧 소외감을 느껴왔다고 말한다. 특별법 제정 과정은 물론 유가족 협의 때마다 자신들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현재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는 7명. 지난해 12월 합동영결식을 치르고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책위 관계자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예 관심 대상에서 묻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어 몇 명끼리라도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인양 문제에 대해서도 일반인 유가족과 안산 유가족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무조건 인양하자’는 주장부터 ‘국민 동의를 거치자’ ‘실익이 없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요셉이 외삼촌 지씨는 “실종자 9명 가족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면서도 “인양으로 뭐를 더 알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고 실익도 크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장종렬 일반인 유가족대책위원장은 “인양은 당연한 일이고 그냥이 아니라 ‘온전한 인양’을 원한다”고 말했다.

가장 잃어 생계 막막한 가족들
유가족들에게 배상 문제는 민감한 주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배상금 규모를 놓고도 일반인과 안산 유가족의 의견이 갈린다. 정부가 밝힌 희생자 배상금은 단원고 학생 4억2000만원, 교사 7억6000만원이다.

반면 일반인 희생자는 소득과 연령에 따라 평균 1억5000만원에서 6억원 사이가 될 전망이다. 안산 유가족은 인양에 앞서 배상을 먼저 제시한 정부를 비판한다. 하지만 일반인 유가족 중에는 액수가 적다는 불만도 있다.

익명을 원한 유가족은 “‘가족이 죽었는데 돈만 밝힌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을 잃은 가족은 생계가 막막한데 정당한 요구까지 묵살되는 게 서운하고 분하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같은 유가족끼리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와 안산 희생자 중심의 유가족 대책위는 소통이 거의 끊겼다. 일반인 유가족은 안산 유가족의 목소리에 외부 단체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태호 부위원장은 “특별법 시행령에 반대하는 삭발식 같은 것도 유가족보다는 외부 단체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이 많다”며 “안산 유가족과 뜻을 같이하는 다른 유가족은 세월호 승무원 가족뿐”이라고 했다.

세월호 승무원 유가족도 마음이 애달프다. 사무장으로 일하다 희생된 양대홍(45)씨의 형 대환(57)씨는 “유가족들에게 지금도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서로 합심해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양쪽 유가족에게 ‘하나로 뭉쳐 대화하자’고 했더니 이후 연락이 뚝 끊겼다”고 털어놓았다. 양 사무장은 아내에게 “아이들 구하러 가야 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침몰하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 달 만에 주검으로 돌아왔다.

총리 공관서 발길 돌린 일반인 유족
지난 10일 안산 단원고와 일반인 유족이 모처럼 한곳에서 이완구 총리를 면담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이 총리가 4·16 가족협의회 전명선 대표와 일반인 유가족대책위 장종렬 위원장 등 10여 명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이 총리는 인양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등과 관련한 가족 측 의견과 요구사항을 들을 계획이었다. 사안마다 이견을 보이던 양측 유가족이 오랜만에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가족협의회 측은 당초 11명의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90여 명이 총리공관 인근까지 이동한 뒤 대표자만 들어가겠다고 요구해서다. 총리공관으로 무리 지어 이동하던 가족들은 경찰에게 제지를 당하자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갔다. 일반인 유가족 측은 총리공관에서 한 시간 넘게 대기하다 발길을 돌렸다. 일반인 대책위 정명교 대변인은 “모처럼 좋은 기회였는데 한쪽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면담이 깨져 유감스럽다”며 “많은 질문과 자료를 준비했는데 한마디도 못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장주영 기자· 나은섭 인턴 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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