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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국 견제 위해 일본에 더욱 힘 실어줄 가능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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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14면

10일 서울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오른쪽)이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과 장관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후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2박3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11일 출국했다. 카터 장관은 “이번 방한의 목적은 한·미·일 3국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라며 “3국 간 안보협력 강화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 요소”라고 밝혔다. 굳건한 3국 동맹을 통해 북한의 무력도발을 억지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카터 장관은 이를 위해 한국에 앞서 일본도 방문해 미·일 군사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카터 미 국방의 한·일 방문 무얼 남겼나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이번 한·일 순방이 묘한 여운을 남겼다고 분석한다. 과거사 인식 문제 등으로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한·일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방문이었지만 실질적으론 한국을 압박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이는 카터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다. 카터 장관은 지난 8일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미·일은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3국 간 협력을 통한 잠재적 이익이 과거의 긴장이나 현재의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일 갈등을 직접 언급한 것으로, 지난 2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지도자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으려고 한다”는 말과도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카터 장관의 발언은 우리 정부가 일본에 요구하는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인식의 전환보다 일본 측 논리를 변호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일 양국 간 갈등 해소의 해법과 관련해 일본 측에 무게를 더 실어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실 동북아에서 일본은 미국 외교정책의 린치핀(linchpin·핵심)”이라며 “특히 중국의 영향력 확대 차단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의 일부분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카터의 “미래 지향” 속뜻에 의구심
카터 장관은 10일 한민구 국방장관과의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3국이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은 (과거사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3국 군 간의 정보공유협정에 관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를 통해 3국의 안보를 더욱 증진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라며 “아시아에서의 역사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지는 우리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근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의 이 같은 발언이 잇따르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카터 장관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과거사 문제에 매달리는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의 ‘한국 피로증’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과거사 집착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익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서 교수는 “중국 견제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한국보다 일본의 효용성이 큰 만큼 앞으로도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집단적 자위권 확대 등을 추진하는 일본 쪽에 더욱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새 스텔스 폭격기 아·태서 중요한 역할”
카터 장관은 지난 8일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을 만난 자리에서는 “미군과 자위대의 역할 분담 등을 담은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예정대로 이달 하순에 개정될 수 있도록 협의를 가속화하자”고 강조했다. 척 헤이글 전 미 국방장관도 집단적 자위권 확대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 총리의 새로운 안보정책에 대해 지지를 보낸 적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일본 역할론은 더욱 탄력을 받는 형국이다.

반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서 우리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모양새다. 카터 장관은 큰 틀에서의 한국의 역할보다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카터 장관은 10일 한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개발 중인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억제전략위원회(DSC)’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회 신설은 이달 중순 미국에서 열리는 제7차 한·미 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최종 결정된다. 또 카터 장관은 방한 기간 중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고 “(천안함 폭침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하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개발 중인 스텔스 폭격기가 아·태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THAAD)’ 배치 문제는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신형 스텔스 폭격기를 배치하겠다는 것은 해당 지역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크게 우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아베 미 의회 연설이 한·일 관계 분수령
미·일 간의 군사·외교 협력관계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김준석 동국대 정외과 교수는 “임기가 채 2년이 남지 않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큰 관심은 이란 핵 문제 해결과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라며 “이미 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해법을 찾았기 때문에 앞으론 중국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이런 측면에서 일본과의 더욱 긴밀한 협력은 미국의 국익과도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북한의 위협은 이미 워싱턴에선 장기 과제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도 나온다. 오는 29일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이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3국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에서 지금과는 달리 한국을 배려한 과거사 관련 발언을 할 수도 있다”며 “현재 미·일 양국이 이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만약 한국 정부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아베 총리의 태도가 바뀐다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일 관계 개선은 물론 한·미·일 공조 강화로 중국을 더욱 압박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이럴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연내 정상회담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14일 서울에서 5년 만에 열리는 한·일 안보정책협의회(2+2)와 16일 미국 워싱턴에서의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될 것이냐가 관심을 끌고 있다. 안보정책협의회에는 한·일 양국의 외교·국방부 국장급이 참석한다. 김준석 교수는 “미·일 관계가 더욱 밀착된다고 우리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결국 우리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로선 아베 총리의 태도 변화만이 한·일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기에 우리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선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주도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익재 기자 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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