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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정신 남기고 … 크렌쇼, 마스터스 44년 여정 마침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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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23면

벤 크렌쇼(오른쪽)가 8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에서 타이거 우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또 한 명의 ‘오거스타 정복자’가 마스터스를 떠난다. ‘퍼팅의 달인’으로 불리는 벤 크렌쇼(63·미국)다. 크렌쇼는 9일(한국시간)부터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제 79회 마스터스를 끝으로 44년의 여정을 마감했다. 올해 97명의 참가자 중 최다 마스터스 출전자인 크렌쇼는 “이곳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고 치열하게 싸웠다. 결정하기 힘들었지만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크렌쇼는 1라운드에서 19오버파를 쳤다. 본인의 마스터스 최악의 스코어다. 오거스타에서 이별의 발걸음을 차마 뗄 수 없는 듯했다. 2라운드에서도 13오버파로 부진해 컷 통과에는 실패했지만 팬들은 기립박수와 함께 ‘그들의 영웅’을 떠나보냈다.

골프 별들의 전쟁 … 여기는 오거스타

 크렌쇼의 패기와 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크렌쇼는 마스터스에서 두 차례(1984, 1995) 우승했다. 준우승과 3위도 각각 2회, 톱10 진입도 11차례나 된다. 1995년에는 유리알 그린으로 악명이 높은 오거스타에서 3퍼트 없이 정상에 올랐다. 평균 퍼트 수가 1.528개에 불과했다.

1995년 마스터스에서 신들린 퍼팅으로 우승한 크렌쇼. [사진 골프위크]

스승 별세 전 마지막 지도 받고 일군 우승
크렌쇼는 “이번에는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다”며 마지막 여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는 첫 출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추어 골퍼였던 크렌쇼는 72년 처음으로 마스터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 19위로 아마추어 최고 성적을 거뒀던 그는 첫 티샷 장면과 함께 한 장의 상징적인 사진을 거론했다. 그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1번 홀 티박스에 섰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골프계의 두 거성인 바이런 넬슨, 진 사라센과 함께 수줍게 찍었던 당시 사진도 방에 걸려 있다. 크렌쇼는 “어떻게 둘과 사진을 찍게 됐는지 영문조차 모르겠다”며 웃었다.

 크렌쇼는 95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꼭 20년 전이다. 그의 멘토이자 스승인 하비 페닉이 세상을 떠난 지도 꼭 20년이 흘렀다. 95년은 마스터스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회자되곤 한다. 크렌쇼는 마스터스 일주일 전에 숨을 거둔 스승에게 마지막 지도를 받고 정상에 섰다. 병상에서도 페닉은 제자의 손을 꼭 붙잡고 “퍼팅할 때 퍼터 헤드가 절대 손보다 먼저 나가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 크렌쇼는 정상에 오른 뒤 “영원한 멘토이자 친구인 페닉에게 우승을 바친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일자형 퍼터로 그린 지배한 ‘퍼팅 달인’
선구자이자 유명 교습가였던 페닉은 크렌쇼의 물 흐르는 듯한 이상적인 퍼트를 완성시켰다. 페닉의 이론을 바탕으로 블레이드(일자형) 퍼터로 부드러우면서도 힘들이지 않는 스트로크를 구사했던 크렌쇼는 현역 시절 내내 그린을 지배했다. 그는 “퍼팅이 잘 되는 날엔 그린과 몸의 일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온화한 성품으로 ‘젠틀 벤’이라는 별명이 붙은 크렌쇼는 자신의 퍼터를 ‘리틀 벤’이라 부르기도 했다.

 95년 우승이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또 있다. 80년대 중반 크렌쇼는 그레이브스 병(안구 돌출성 갑상선종)을 앓았다. 10년 만에 이를 이겨내고 마스터스에서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는 80년부터 13년 연속 마스터스 컷 통과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55세였던 2007년에도 55위를 차지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마스터스의 모든 것을 누린 크렌쇼에게도 아쉬운 게 있다. 마스터스의 창시자인 ‘골프 성인’ 보비 존스(미국)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오거스타의 설계를 주도했던 존스는 1971년 세상을 떠났다. 크렌쇼는 “존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에게 더욱 매료됐다. 존스야말로 모든 부분에서 한계를 뛰어 넘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최초로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위대한 아마추어’ 존스는 마스터스가 열린 첫 해인 34년부터 대회에 출전했다. 11번 참가했지만 우승 없이 공동 13위(34년)가 최고 성적이었다.

 크렌쇼가 두 번째 그린재킷을 입은 그 해엔 ‘괴물’이 등장했다. 바로 타이거 우즈(40·미국)다. 95년 자연스럽게 바통 터치가 이어졌고, 우즈는 이후 마스터스를 지배했다. 95년 마스터스에 처음 출전해 공동 41위를 한 우즈는 이듬해엔 컷 탈락했다. 이후에는 컷 탈락이 없었다. 97년 역사적인 우승을 거두며 ‘우즈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 해 마스터스에서 우즈는 잭 니클러스의 271타 최소타 우승 기록(65년)을 깨뜨리고, 270타(18언더파)의 신기록으로 ‘골프 황제’의 탄생을 알렸다. 당시 12타 차 우승 기록도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21세 104일로 최연소 우승 기록도 썼다.

우즈 2라운드까지 2언더파로 매킬로이와 동타
우즈는 2001년과 2002년 2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다. 2001년 두 번째 우승으로 ‘타이거 슬램’을 완성했다. 마스터스에서 우승 4번, 준우승 2번, 3위 1번, 4위 3번, 5위 1번을 기록했다. 97년 이후 최악의 성적이 40위에 불과할 정도로 유난히 오거스타에서 강했다. 우즈의 전성기 시절 도박사들은 그의 우승 배당률을 3대1로 매기기도 했다.

 우즈는 올 시즌 초반 허리 통증 재발과 칩샷 입스(공포증) 증상으로 2년 연속 마스터스에 결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승할 준비가 되면 돌아오겠다”던 우즈는 9주 만에 공백을 털고 마스터스를 복귀전으로 선택했다. 우즈는 “엉덩이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훈련했다”는 출사표로 대회 열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2004년 이후 11년 만에 파3 콘테스트에 모습을 드러내며 팬 서비스도 했다. 지난해 부상으로 우즈가 결장했을 때는 모두가 ‘우즈 앓이’를 했지만 이번에는 우즈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필 미켈슨(미국)은 “우즈가 참가하는 대회에서 우승해야 진정한 우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즈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복귀전을 치렀다. 2라운드까지 2언더파로 세계랭킹 1위이자 이번 대회에서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로리 매킬로이(26·북아일랜드)와 같은 성적으로 가볍게 컷을 통과했다.

 미국의 신예 조던 스피스(22)는 2라운드까지 14언더파로 단독선두를 질주했다. 그는 마스터스 36홀(종전 13언더파) 최소타 신기록을 작성하며 2위 찰리 호프먼(39·미국)을 5타 차로 따돌렸다. 케빈 나(32)가 4언더파 공동 8위, 노승열(24·나이키)이 이븐파 공동 29위, 배상문(29)이 1오버파 공동 33위로 2라운드를 마쳤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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