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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불운과 대결하라” 눈으로 말하는 恭齋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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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29면

공재 윤두서 작 ‘자화상’ 종이에 엷은 색, 38.5×20.5㎝,18세기 초 국보 제 240호, 녹우당 소장 [중앙포토]

좋은 그림을 찾아 나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문광훈(51) 충북대 독문학과 교수는 자문한다. “예술이, 그것을 감상하는 나와 우리의 지금 삶을 쇄신시키는 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있을 것인가?” 그는 최근 펴낸 『심미주의 선언』(김영사)에서 자신에게 쇄신의 길을 일러준 그림 한 점을 소개했다. 17~18세기 조선 문인화가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이다.

문 교수는 공재의 ‘자화상’을 책상 앞에 걸어두고 오랫동안 명상해왔다고 썼다. “일체의 수식과 미화를 배제한” 채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만이 형형한 얼굴이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가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하다. 꽉 다문 입이 보는 이에게 전하는 말을 문 교수는 이렇게 읽었다. “나는 세계를 응시한다. 나의 미진(未盡)을 추스르면서 삶의 불운, 세상의 불의와 대결한다. 나는 탐구하며 나아갈 것이다. ”

한국회화사에서 이 그림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18세기 이전의 유일한 자화상으로 평가받는다. 측면 구도에 의관을 잘 갖춰 입은 모습의 조선시대 초상화와 너무도 다른 파격의 형식으로 학계의 연구대상이다. 왜 머리통만 달랑 그려넣었을까, 라는 의문으로부터 채색과 음영이 서양기법을 연상시킨다는 지적까지 지난 수십 년 간 문제작으로 꼽혀왔다. 공재 서거 300주년을 기려 국립광주박물관이 주최한 특별전 ‘공재 윤두서’(2014년 10월 21일~2015년 1월 18일) 또한 학술심포지엄을 함께 열어 이런 쟁점들을 중심으로 논쟁했다.

미술사학자들이 도상과 화법 파헤치기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문광훈 교수는 공재의 내면으로 뚫고 들어갔다. 300년의 세월을 격해 두 인간이, 두 인격이 만났다. 아마도 이런 마음의 연결이 이른바 명작(名作)이라 일컬어지는 예술혼을 가늠하는 잣대이리라. “이질적인 것 사이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종류의 만남과 교차, 이 교차가 갖는 효과는 무엇일까? 나는 이 교차의 상호작용에 어떤 ‘변형적 계기’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고 문 교수는 적었다. 그것은 개심(改心)의 체험과 유사하다.

문 교수는 공재의 자화상에서 두 개의 사자성어를 끌어낸다. ‘정구연핵’과 ‘염정자수’다. 정밀하게 궁구하여 사물의 뜻을 밝히고, 고요한 가운데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 선비로서 공재가 견지한 학문원칙과 생활원칙인 셈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살피면서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을 점점 더 알아가고, 자신을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목숨 받은 자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공재의 자화상은 ‘선한 일은 너 자신을 위해 하라’고 침묵으로 웅변한다. 시공을 뛰어넘은 그림 한 점이 우리에게 와 감각을 일깨워 새롭게 하는 놀라운 힘.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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