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디테일의 재발견 - ‘버드맨’의 엔딩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위너였던 ‘버드맨’(3월 5일 개봉,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엔딩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지닌다.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마술처럼 뒤엉킨 영화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은 채 문을 닫아 버리고, 우린 엔딩을 받아들이기 위해 몇 가지 가설을 세워야 한다.

사진1

인생을 건 연극의 오프닝 무대. 리건(마이클 키튼)은 마지막 순간 연극용 소품이 아닌 진짜 총을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놀란 관객은 잠시 침묵에 빠지지만 기립 박수를 쳐댄다. 이때까지 교묘한 편집으로 마치 한 숏처럼 이어지던 영화는 갑자기 빠른 편집의 몽타주를 보여준다. 하늘에선 유성이 떨어지고, 무대 위로 갑자기 마칭 밴드가 나타나며, 거리에서 봤던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사람도 나타난다. 해파리와 새 떼가 있는 바닷가 풍경, 붉은 등이 있는 푸른 방…. 그리고 장면이 바뀌면 병실에 리건이 누워 있다. 총알이 빗나가 죽지 않고 코를 다친 리건. 제이크(잭 칼리피아나키스)는 평단의 극찬이 실린 신문을 그에게 보여준다. 전처인 실비아(에이미 라이언)가 나가자 딸 샘(엠마 스톤)이 꽃을 들고 들어온다. 샘이 화병을 찾으러 잠깐 나간 사이, 리건은 거울을 보며 코의 붕대를 뗀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뺀다. 샘이 들어왔지만 리건은 보이지 않는다. 샘은 창밖을 바라보다 서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웃는다(사진 1).

사진2

과연 샘이 본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 가설.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은 모두 현실이다. 리건은 미치지 않았고, 그에겐 진정 수퍼 히어로의 능력이 있다. 다만 그의 초능력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샘은 하늘을 나는 리건을 볼 수 있다. 리건과 샘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봐도 이 영화의 초현실적인 장면은 리건의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버드맨 캐릭터의 환청과 죽음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간다. 리건은 병원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 분명하며, 샘이 방으로 들어올 땐 앰뷸런스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샘은 왜 하늘을 보았을까. 어쩌면 샘도 리건처럼 미쳐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고개를 들기 전, 아래를 바라보는 샘의 표정은 매우 진지하며 심각하다(사진 2). 처참하게 죽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한 듯하다. 이후 웃는 표정으로 바뀌며,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사진3
사진4

좀 더 과격하게 본다면, 영화가 시작하기 전 이미 리건은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실비아에게 마지막 결혼 기념일 파티를 이야기하며, 그날 해변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해파리의 공격을 받고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는 그때 죽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도입부에 보이는 바닷가 장면(사진 3)은 해변에 누워 죽어가는 리건의 시점 숏이며, 떨어지는 유성(사진 4)은 그의 죽음에 대한 상징이다. 이 두 이미지는 무대 위에 리건이 쓰러졌을 때도 반복된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 전체는 그가 죽기 전에 떠올렸던 ‘원했던 삶’에 대한 상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엔딩은 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리건의 열망 혹은 리건에 대한 샘의 꿈일 수도 있다.

사진5

그가 죽은 시점을 무대 위로 볼 수도 있다(사진 5). 이어지는 몽타주는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삶의 기억이며, 유성의 이미지는 그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총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병원신은 그가 죽기 전에 잠깐 꾸는 꿈이다. 평론가의 극찬을 받고 가족이 회복되며 유명 인사가 되는, 행복한 꿈이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원래 엔딩. ‘버드맨’의 작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디네나리스에 의하면, 마지막 장면에 조니 뎁이 출연할 예정이었다고. 원래 엔딩에서는 뎁이 리건 대신 출연하는 배우로 등장한다. 그가 분장실 거울 앞에 앉아 있는데, 벽엔 ‘캐리비안의 해적’ 5편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때 뎁은 리건이 버드맨과 그랬던 것처럼 잭 스패로우와 대화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제기랄,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친구?” 특정 캐릭터 이미지로 굳어 버린 스타가 빠질 수밖에 없는 영원한 구렁텅이 같은 걸까. 하지만 이 결말이 성사되진 못했다.

글=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