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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등 닮은 낙산길 … 도시 속 문화 오아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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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양도성 낙산 구간은 마을과 도성이 공존한다. 샛노란 개나리가 피어 있는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 옆 도성길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낙산 구간은 걷기 편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김상선 기자]

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한양도성 낙산(駱山) 구간은 등산화 없이도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출발 지점으로 동대문보다는 혜화문을 추천한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150m쯤 걸으면 된다. 도성을 따라 핀 개나리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카메라와 셀카봉을 든 연인들이 곳곳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벽 아래서 자라난 잡초에선 봄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느긋한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평지가 나타난다. 이어 단독주택 사이로 작은 카페가 보인다. 삼선교로 4길에 있는 카페 ‘마루’는 도성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유일한 카페다. 단독주택 1층을 개조한 이곳은 1년 6개월 전 문을 열었다. 평일 오후 가게는 한산하다. 손님 2명이 전부다.

 “(도성이) 너무 예쁘죠? 하얀 눈이 쌓일 때가 제일 예쁜데 꽃이 피는 요즘도 도성 보며 걷기에 참 좋아요.”

 류미덕(50) 사장의 첫마디다. 류 사장은 “가게를 열고 손해만 보고 있지만 가까이에서 도성을 보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가게 바로 앞 주차장에는 나무로 만든 간이의자를 놓아뒀다. 커피나 차를 마시며 한양도성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카페의 주말 단골손님은 2000년 철거된 옛 낙산아파트 주민들이다. 낙타의 등을 닮은 낙산(해발 125m)엔 5층 아파트 30개 동이 있었지만 철거된 뒤 공원이 조성됐다.

이화동 벽화마을 계단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벽화마을은 중국 관광객이 꼭 들르는 관광지다. [김상선 기자]

낙산구간 성벽은 인왕산·남산 구간과 비교해 성돌 부식이 심했다. 곳곳에서 풍화가 진행되고 있다. 혜화문에서 조금 걷자 푸석하게 깨져 모래로 변한 성돌이 성벽에 박혀 있었다. 성돌 사이로 잡초와 이끼가 자라는 곳도 있었다. 나무 뿌리가 삐져나온 장소도 관찰됐다. 서울시가 안내문을 붙여 놨지만 보존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긴 힘들었다.

 대학로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낙산공원은 벚꽃이 한창이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일품인 낙산은 조선시대부터 멋진 경치를 인정받았다.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1622~1658)은 석양루(夕陽樓)를 짓고 머물렀고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는 남편이 영월로 유배를 떠나자 낙산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낙산구간 곳곳에선 풍화된 성돌을 쉽게 볼 수 있다. 성벽 중간에 성돌 일부가 빠져 있는 곳도 보인다. [강기헌 기자]

 낙산공원 바로 옆 이화동 벽화마을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이곳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모(55)씨는 “중국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공원에서 벽화마을로 이어지는 1970년대풍의 좁은 골목엔 카페와 음식점이 가득하다. 메뉴판은 중국어와 한글을 병기해 사용한다. 홍콩에서 왔다는 관광객 쟝찐잉(25·여)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들렀다. 분위기가 한산해 휴식처에 온 듯한 기분”이라며 “공기가 좋고 풍경이 특색 있어 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말했다. 벽화마을이 중국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자 한양도성도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벽화마을에 들른 관광객들은 가이드 손에 이끌려 한양도성에 오른다.

 오후 7시 무렵. 서쪽 하늘로 해가 넘어가자 낙산 중턱을 지나는 한양도성 끝자락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글=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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