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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게임에 빠진 남자는 유치하다? 오늘도 아내 몰래 게임을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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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그렇다. 나는 게임 하는 남자다. 집에 오자마자 자연스레 소파에 앉는다. 플레이스테이션 조이패드를 손에 쥐고 전원 버튼을 누른다. 최근 용돈을 털어 마련한 메이저리그 야구 게임이다. 그때부터 시간은 초고속으로 진행된다.

 “난 게임 하는 남자가 제일 한심해 보이더라.” 입을 벌리고 TV 속 화면을 쳐다보다 아내의 잔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다. 할 수 없이 조이패드를 손에서 놓고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찾는다. 저장돼 있던 게임 애플리케이션(앱)을 누르고 다시금 화면에 빠져든다. 내 땅을 뺏으려는 아이디 ‘pororo’를 오늘은 꼭 이기고 말 테다. 하다가 지겨워지면 노트북에 손을 뻗는다. 이번엔 국내 프로야구 게임이다.

 게임을 시작한 지 어느덧 17년째. 엄마 몰래 ‘삼국지’를 즐겼던 중학생은 이제 아내 몰래 온라인·콘솔·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아저씨가 됐다. 심심하면 친구들과 ‘플스방’(플레이스테이션 게임방)에 가서 ‘위닝’(축구 게임)을 즐기는 것은 기본이다. 친한 친구는 퇴근하자마자 PC방으로 ‘출근’해 요즘 대세인 온라인 게임 ‘롤’을 하며 밤을 새운다. 게임 세계에서 등급이 높을수록 현실 세계에서도 더 ‘잘난 남자’ 대우를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게임 하는 남자들은 여전히 ‘죄인’이다. 16세 미만 청소년들은 셧다운제 때문에 늦은 밤 게임을 하지 못한다. 국회에선 2013년 ‘게임중독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심지어 게임에 빠진 남자친구를 감시하기 위한 앱도 개발됐다. 아이디만 입력하면 게임 접속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제는 게임 하면서 휴대전화 앱 눈치까지 봐야 하는 세상이다.

 사이좋게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데이트를 하는 커플도 드물게 있다. 하지만 많은 여자들은 게임 하는 남자친구를 유치하게 생각한다. 별거 아닌 일에 빠져 다른 건 팽개치고 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다.

 그래도 남자들도 할 말이 있다.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가며 ‘미션’을 통과하는 성취감은 무한 경쟁의 현실 사회에서 쉽게 맛보기 힘들다. 또한 남자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할 수 있는 일이 술 먹고 게임 하는 것 외에 뭐가 있을까. 밖에서 스트레스 팍팍 받으며 일하다 집에 와선 머리를 비울 수 있으니 정신 건강에도 한몫한다. 예전에는 골목길에서 친구를 만나던 아이들도 요즘은 온라인으로 인사하고 게임으로 어울릴 수밖에 없다.

 게임도 중독되지만 않으면 충분히 좋은 취미생활이 되지 않을까. 국내 온라인 게임개발사들이 ‘게임 한류’를 만들어내고, 한우물만 파서 세계 최고가 된 프로 게이머들도 있지 않나.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도 게임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여보, 오늘도 딱 한 시간만 허락해주라. 응?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