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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쌈짓돈' 친박이 휩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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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26일 지방교부세에 대해 “1960년대에 도입된 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본 골격에 큰 변화가 없었다”며 “적폐가 있으면 과감히 개혁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방재정 제도의 개혁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지방교부세 중 특별교부세란 게 있다. 원래 빈부 차가 큰 시·군 간 균형을 맞추려 가난한 시·군에 중앙정부가 나눠주는 돈이다. 하지만 50년 된 이 제도는 자기 지역구에 돈을 얼마나 끌어오느냐는 식의, 국회의원들 간 ‘힘’이 평가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취재팀이 행정자치부의 ‘2014년 전국 특별교부세 배정내역’을 단독으로 입수해 분석한 결과에선 박 대통령이 표현한 “적폐”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해 특별교부세 9861억원 가운데 재해 발생 때 지원하는 ‘재난안전’ 명목의 돈과 행정구역 개편 등의 이유로 집행된 ‘시책수요’를 제외하고 ‘지역현안’으로 지출된 3183억원을 추려 분석한 결과 친박계 의원들이 있는 지역구에 집중 배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금액 기준으로 상위 10위에 해당하는 지역 중 친박 의원들이 속한 지역이 8곳이나 됐다. 의원 수는 10명. 30위 안에는 12개 지역구, 15명의 의원이 포함됐다. 경남 창원시가 77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새누리당 이주영·안홍준 의원 등이 이 지역 국회의원이다. 2위는 61억원을 받은 대구 달서구였다. 이 지역의 현역 의원 역시 친박계인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다. 3위도 친박계인 새누리당 정수성 의원 지역구인 경주시(60억원)였다.

 반면 30위 이내에 친이계 새누리당 의원은 4명(강석호·이병석·주호영·홍일표), 야당의 주류인 친노계는 4명(노영민·민홍철·박범계·우윤근)이 포함됐다. 상위 30위 중 친박계 의원 지역엔 모두 583억원, 친이계 의원 지역엔 149억원, 친노 의원 지역엔 156억5000만원이 배정됐다. 지난해 특별교부세 배분은 친박계인 유정복 장관 시절에 이뤄졌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권력에 따라 지역별 교부 규모가 확 달라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엔 친노계인 열린우리당 최철국 의원의 지역구인 김해시가 1위였고, 상위 10곳 안에 열린우리당 실세 의원의 지역인 전북 군산(강봉균), 광주시 북구(강기정·김태홍), 전주시(장영달·이광철) 등이 포함됐다.

 취재팀은 특별교부세를 많이 유치한 지역구 의원 20명에게 어떻게 특별교부세를 따냈는지 질문했다.

복수의 응답자가 “정부 쌈짓돈인 특별교부세를 받기 위해 정부 부처에 로비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대선에 기여했으면 선물 좀 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새누리당 의원은 “특별교부세엔 장관과의 인간관계가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영남지역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장관은 특별교부세를 갖고 의원들과 힘겨루기를 한다. 예산 심의 때 부처 사업을 챙겨주거나 힘을 실어주면 보답으로 교부세를 챙겨주는 식”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친박 의원 지역에, 노무현 정부에선 친노 의원 지역에 특별교부세가 집중되고 있는 것은 자의적으로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대 홍성걸(행정학) 교수는 “특별교부세의 명확한 배분 기준이 없다 보니 정치 실세와 행자부가 서로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며 “진짜 필요한 예산은 힘겨루기 과정에서 누락되고, 권력의 흐름에 따라 매년 수천억원의 세금이 옮겨다닌다”고 지적했다.

 특별교부세를 ‘특별한 재정수요’에 쓰는 돈으로 법률에 정해 놓았으나 일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과 차이가 없이 운용되고 있었다. 경남 창원시의 경우 마을 진입로 확장(3억원), 연결육교 설치(2억원), 공영주차장 조성(10억원) 등의 명목으로 특별교부세를 받았다.

◆특별취재팀=강민석(팀장)·강태화·현일훈·이지상·김경희·안효성 기자 mskang@joongang.co.kr

◆특별교부세=중앙정부가 각 시·군·구에 지원해 주는 지방교부세의 하나. 용도 제한 없이 시·군·구의 재정 부족을 도와주는 보통교부세와 달리 특별한 재정 수요가 있는 경우로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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