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세상읽기

미국의 '뉴노멀'과 중국의 '신창타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박용석]
김종수
논설위원

올해 중국 경제를 특징짓는 화두를 하나 들라면 단연 ‘신창타이(新常態)’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말 열린 보아오포럼 연차총회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신창타이에 들어선 중국 경제는 성장률에만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제의 구조조정을 중요한 위치에 놓고 개혁·개방을 더욱 심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보아오포럼에 앞서 열린 중국 양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에서도 중국 정부는 중국 경제가 신창타이에 들어섰음을 공식화했다. 올해 성장률 목표를 7%로 낮춰 잡고 중국의 모든 경제정책을 여기에 맞춰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신창타이는 미국에서 나온 용어인 뉴노멀(New Normal)을 중국식 한자로 직역한 것이다. 창타이(常態)는 중국어로 ‘정상적인 상태(狀態)’를 일컫는 말이므로 신창타이는 말 그대로 ‘새로운 정상상태’를 뜻한다. 개혁·개방 이후 줄곧 두 자릿수의 고속 성장을 계속해 온 중국 경제가 2012년부터 7%대로 성장세가 둔화되자 이를 ‘새로운 정상 상태’로 인정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신창타이는 장기적인 저성장을 뜻하는 미국식 뉴노멀의 개념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저성장의 수준과 대응 전략을 자세히 뜯어보면 중국의 신창타이는 미국의 뉴노멀과는 확연히 다르다.

 ‘뉴 노멀’이란 용어는 IT(정보기술) 거품이 꺼진 2003년 미국의 경제 상황을 일컫는 말로, 벤처캐피털리스트 조저 맥나미가 처음 사용했고,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이후 경제 상황을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인 핌코의 최고경영자 무함마드 엘 에리안이 뉴노멀로 지칭하면서 널리 퍼졌다(한국경제신문 경제용어사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 가계가 다투어 부채 축소에 나서면서 저성장·저소득·저수익률 등 3저 현상이 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13년 말 로런스 서머스(전 미국재무장관) 하버드대 교수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포럼에서 “세계 경제가 저성장·저물가·저금리·저고용의 구조적인 장기 정체(secular stagnation)에 빠졌을지 모른다”며 이처럼 경기 침체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상황을 ‘뉴노멀’로 규정하면서 뉴노멀이란 용어는 다시금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머스가 말하는 뉴노멀은 저성장을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인위적인 성장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다분히 수동적이고 체념적인 성장회의론에 가깝다. 서머스는 장기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벤 버냉키 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같은 이는 장기 침체 가설 자체를 부인하면서 영구적인 확장적 재정정책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서머스의 뉴노멀은 미국 같은 선진국에는 일면 타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중국처럼 여전히 성장에 목마른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직 갈 길이 먼 개도국과 저개발국들더러 저성장이 새로운 정상 상태이니 성장정책을 포기하라면 그게 곧이곧대로 들리겠는가.

 중국의 신창타이는 성장의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미국식 뉴노멀과 다른 길을 걷는다. 즉 신창타이는 성장률 목표는 낮춰 잡되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성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의 새로운 실크로드 건설) 전략과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설립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신경제 구상은 신창타이 시대를 맞은 중국의 야심찬 미래 성장 전략이다. 저임금에 기반한 밀어내기 수출의 성장 방식을 접고, 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대규모 개발사업과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새로운 물류 네트워크 건설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것이다. 즉 중국의 신창타이는 성장의 속도는 늦추되 성장의 질과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겠다는 새로운 포석인 셈이다. 무엇보다 두 자릿수 성장률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는 하지만 13억 인구가 앞으로도 계속 매년 7%씩 성장하겠다는 것은 여전히 경이적인 성장 전략이다.

 최근 벌어진 AIIB 설립을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은 아시아 지역과 세계경제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양국의 패권다툼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미국의 뉴노멀과 중국의 신창타이가 보여주는 성장에 대한 인식과 전략의 차이가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마저) 미국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다투어 AIIB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수동적이고 체념적인 미국의 뉴노멀보다 진취적이고 전향적인 중국의 신창타이가 자국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고 본 것은 아닐까. 미국이 적응해야 할 뉴노멀은 서머스가 상정한 저성장 구조가 아니라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성장 방식에 세계 각국이 동참하는 중국식 신창타이일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심 끝에 AIIB 가입을 결정한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새롭게 고민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장기간 저성장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는 미국식 뉴노멀인지, 중국의 신창타이인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지.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