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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국립외교원에 '일대일로' 과목을 개설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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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엊그제 공개된 중국의 신(新)국가발전전략, 즉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경제권)’ 업무영도소조 지도부 5명의 면면을 보면 한국 외교가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다. 40년 넘게 외교부에서 잔뼈가 굵은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그 주인공이다. 신경제 전략으로만 알려진 일대일로에는 금융과 실물경제 전문가인 장가오리(張高麗) 정치국 상무위원을 포함해 대부분 경제 전문가다. 한데 경제 근방에도 가보지 않은 양 위원이 포함된 함의는 뭘까.

 일대일로가 아시아와 유럽·중동·아프리카로 이어지는 국제적 전략인 만큼 실무 외교의 총사령탑인 양 위원의 포함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2013년 6월로 거슬러 가 보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이 미·중 신형 대국관계를 구축하자고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해한다”며 에둘러 거부 의사를 밝혀서다.

 체면을 구긴 시 주석은 3개월 후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일대일로 구축을 선언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중국이 과거 실크로드를 복원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려는 신경제 전략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최근 (일대일로를 위한)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가입국이 당초 예상했던 45개국을 넘어 55개국까지 늘어나고 한국과 영국 등 미국의 우방들도 대거 참여하자 국제사회는 일대일로가 단순한 경제 전략을 넘어 신외교전략이라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의 한 대학 교수는 사석에서 “미국에서 돌아온 시 주석은 왕후닝 책사에게 미국과의 정면승부가 아닌 우회 전략 수립을 주문했고, 그 당시 연구 중이던 일대일로는 경제와 외교·문화를 아우르는 신국가외교전략으로 확대됐다”고 털어놨다. 경제 논리로 미국을 속이는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기만하고 바다를 건넌다) 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중국의 신외교전략이 대북 외교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지난달 시 주석이 북한과 인접한 동북 3성에 주변국과 (경제와 인문) 협력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이 그 변화의 시작이라고 본다. 중국 외교 전문가들은 이미 한국의 AIIB 자금을 북한 인프라 개선에 투자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구상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연결해야 한다는 신한반도전략을 거론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일대일로를 모르고 중국과 상대하는 모든 나라와 외교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립외교원에 일대일로 과목이 필수로 개설돼야 하는 이유다.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