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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영화 '김씨 표류기'와 짜장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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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씨표류기’ 속에서 주인공 김씨는 도심 속 무인도 밤섬에 갇힌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그는 우연히 발견한 짜장라면 봉지 속 짜장스프를 보고 희망을 갖는다. [김경록 기자]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영화 ‘김씨표류기’의 짜장면입니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주문할 때마다 고민스럽습니다. 두 가지를 한 그릇에 담아내는 ‘짬짜면’이 나왔을 정도니까요. 짜장면은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음식이지만 영화 ‘김씨표류기’ 속 주인공에겐 꿈 속에서도 생각나는 간절한 음식입니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 주인공 김씨는 열심히 살아갑니다. 1년 중 단 하루, 고민 없이 짜장면을 선택할 수 있는 4월 14일 블랙데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와 함께 짜장면 한 그릇 맛있게 드셔보세요. 이래 봬도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음식입니다.

#1 우연히 짜장라면 봉지 속 짜장스프를 발견한 이후 남자 김씨는 짜장면 생각이 간절하다. 라면봉지에 있는 짜장스프의 재료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잠든다. 그러나 짜장면은 꿈까지 나오며 김씨를 괴롭힌다. 다음 날 그는 일어나자마자 짜장면과 비슷한 것을 만들기 위해 풀과 흙을 빻아 뭉쳐본다.

 “반드시 밀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밀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면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중략) 지나온 인생을 반추하며 짜장면을 거부했던 그 숱한 오만과 독선의 순간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짜장면을 TV 보느라 거부했던 일, 당구장에서 친구들은 짜장면 먹을 때 혼자 당구쳤던 일, 회사 동료들과 중국집에서 갔을 때 상사가 짜장면으로 메뉴를 통일하자고 했을 때 혼자 울면을 시켰던 과거를 떠올리며 고개 숙여 운다.)

#2 남자 김씨가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본 여자 김씨는 남자가 있는 밤섬으로 짜장면을 배달시킨다. 오리배를 타고 밤섬에 도착한 배달원이 남자 앞에 짜장면을 내려놓는다.

배달원: 짜장면 시키신 분. (배달원을 피해 숨어있는 김씨를 보며) 여기 짜장면. 저기요. 아니, 어떤 여자가 여기로 짜장면을…. (철가방에서 짜장면을 하나씩 꺼내며) 보통짜장, 간짜장, 삼선짜장, 그리고 서비스(군만두). 사실 그래요. 배달, 어디든 가는 게 원칙이긴 한데. 너무, 이번 건은…. 식사 많이 하시고요. 그릇은…. 가지세요.

남자 김씨: 저기요. 그 여자 어떤 여자예요. 어떻게 생겼어요.

배달원: 저도 상당히 보고 싶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여잔지.

(그토록 원하던 짜장면이지만 김씨는 배달원을 불러 모두 돌려보낸다. 배달원은 오리배를 타고 강을 건너 여자 김씨의 아파트로 간다.)

배달원: 두 분…. 참 서로 애틋하시다. 뭉클해. 뭉클해. 전해달래요. 자기한테 자장면은 희망이래요. 그 남자 가까이하지 마세요. 그릇은 가지시고.

여자 김씨: (방에 짜장면을 펼쳐 놓고 앉아 짜장면 냄새를 맡는다) 희망? 100년 만에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남자가 보내온 이 거대한 희망을 맛보기로 합니다. (짜장면 먹으며) 희망의 맛이 분명합니다. 진짜루.

롯데호텔서울 도림의 여경옥 셰프가 만든 짜장면과 영화 속 김씨의 합성 사진. 영화에선 짜장라면 스프로 소스를 만들지만 여 셰프는 기름을 충분히 두른 팬에 춘장을 30초 정도 볶아서 춘장 특유의 향을 살렸다. [김경록 기자]

외국음식 중 유일하게 '100대 한국 문화'에
영화에선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희망'
춘장을 센 불에 기름과 볶는 게 맛의 비결
 

영화 ‘김씨표류기’는 자살 시도가 실패해 한강 밤섬에 떠내려온 남자 김씨(정재영)의 얘기로 시작한다. 죽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생각에 일단 섬에서 살기로 한 남자는 밤섬 탈출을 꿈꾸며 모래사장에 ‘HELP’라고 썼던 문구를 ‘HELLO’로 고쳐쓴다. 야생 생활에 제법 익숙해질 무렵 우연히 발견한 짜장라면 봉지 속 짜장스프는 그에게 희망을 꿈꾸게 한다. 그런 남자를 멀리서 지켜보는 여자 김씨(정려원). 여자는 3년째 작고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져와 홈피를 꾸미며 가상의 삶을 살고있다. 그런 여자가 밤섬에 갇힌 남자를 발견하고 그와의 접촉을 시도한다.

 혼자 있을 때도, 많은 사람들과 있을 때도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 영화 속에서 세상과 분리된 남녀 주인공의 모습은 어딘가 우리 일상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난 후 주인공들이 먹던 짜장면 생각이 난다. 영화에서 짜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희망이기 때문이다. 영화 중에 나오는 짜장면 비비는 소리가 영화가 끝난 후까지 귓전에 남아 저절로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영화가 상영되던 당시(2009년) 무대인사에서도 짜장면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밤섬과 한강이 보이는 63시티 중식당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이벤트도 짜장면 파티로 열렸다. 이해준 감독과 주인공 정재영은 관객들과 함께 짜장면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이 감독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나의 독재자’에도 짜장면 먹는 장면을 넣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짜장면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음식이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선택을 하게 됐다. 김씨표류기 때 촬영장에서 짜장면을 많이 시켜 먹었다. 짜장면을 많이 먹으면 좋은 생각이 날 것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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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짜장면은 먹거리가 부족하던 과거에는 입학식이나 졸업식 날처럼 특별한 날이이라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비록 지금은 대표적인 배달음식으로 자리잡아 언제든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특별한 날이면 빼놓기 허전하다. 어쩌다 한번씩은 꼭 생각나 찾게 된다.

 짜장면이 국내에 들어온 건 100여 년 전이다. 임오군란(1882년) 당시 청나라 군인들을 따라 국내로 들어온 중국 상인들을 통해서다. 이들은 1920년 항구를 통한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중국 무역상을 위한 음식점을 냈다. 해방 직후 정부가 국내 중국 상인들의 활동을 제한하자 무역업에 종사하던 중국인들까지 너도나도 음식점을 차리며 중국 음식점이 크게 늘었다. 값싸고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한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짜장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한 건 1905년 문을 연 인천 공화춘(등록문화재 287호)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짜장면은 중국에서 건너왔지만 사실 중국의 것과 우리가 먹는 것은 다르다. 여경옥 롯데호텔서울 중식당 도림 셰프(중식부문 상무)는 “중국식 자장면(炸醬麵)은 면에 생채소를 올리고 춘장을 올려 비벼 먹는 비빔면에 가깝다. 한국 짜장면은 춘장을 그대로 먹는 게 아니라 춘장에 채소와 고기를 넣고 볶아 새로운 짜장 소스를 만들어 면과 비벼 먹는다”고 설명했다. 춘장도 다르다. 한국에선 색을 내기 위해 카라멜 소스를 넣어 검은색을 띄지만 중국의 춘장은 된장처럼 노란색을 띈다.

 한국인의 짜장면 사랑은 특별하다. 중국보다 한국에서 더 즐겨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 셰프는 “중국은 베이징이나 산둥성 지역에서 주로 먹지만 한국은 어디에서나 누구나 자주 먹는다. 종류도 보통짜장·간짜장·쟁반짜장·삼선짜장·고추짜장 등 15개가 넘을 만큼 다양하다.”고 했다. 실제 짜장면은 외국에서 온 음식 중에는 유일하게 김치·고추장·태극기와 함께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한국의 100대 민족문화 상징’에 이름을 올렸다. 또 정부의 중점 물가관리 품목이기도 하다.

 짜장면은 외식 또는 배달 음식으로 익숙하지만 사실 만드는 과정이 어렵지 않아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 다양한 굵기의 면을 마트나 백화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여 셰프는 “짜장면은 춘장과 채소를 기름에 잘 볶아주면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춘장을 넣은 후 30초 이상 볶는 게 맛의 비결이다. 기름과 함께 볶으면서 춘장 특유의 향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채소도 기름을 충분히 두른 후 센불에서 볶아야 잘 익히면서 동시에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서울의 짜장면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오래된 짜장면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 롯데호텔서울 도림 여경옥 셰프(중식부문 상무), 리츠칼튼서울 취홍 조경식 셰프, JW메리어트서울 만호 왕귀호 부주방장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최소 20년 이상의 전통 있는 중식당입니다.

복성각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다양한 짜장면이 있다.
면이 납작한 납작짜장은 이곳에서 맛보는 별미다”

○ 특징: 신촌에서 노란짜장·빨간짜장 등 자체 개발한 개성 넘치는 짜장면으로 20년간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 2012년 마포로 자리를 옮겼다. 기본 짜장면부터 간짜장·삼선짜장·삼선간짜장·납작짜장·납짝고추짜장·고추짜장·볶음짜장 등 8종류의 다양한 짜장면이 있다. 6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룸부터 소규모 룸이 다양하게 있어 가족 모임이나 행사를 하기에도 좋다.
○ 가격: 짜장면 5000원, 간짜장 5500원,
○ 영업 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연중무휴)
○ 전화번호: 02-703-3700
○ 주소: 마포구 마포대로 63-8(도화동 173) 삼창프라자 지하 1층
○ 주차: 건물 지하주차장(3시간 무료)

진아춘
“대학로에서 청춘을 보낸 이들에겐 추억이 가득한 곳.
담백한 맛의 짜장면을 먹고 싶을 때 찾는다”

○ 특징: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온 화교가 1940년 대학로에 문을 연 이후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역사 깊은 곳이다. ‘짜장면=짜고 기름지다’라는 편견과 달리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난다.
○ 가격: 짜장면 5500원, 삼선짜장 8000원, 볶음짜장 8000원
○ 영업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765-5688
○ 주소: 종로구 대명1길 18(명륜4가 66-2)
○ 주차: 불가

개화
“명동 화교 골목의 여러 중국집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
푸짐한 짜장소스에 면을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 특징: 2대에 이어 60년째 명동 화교 골목을 지키는 터줏대감이다. 짜장소스에는 잘게 다진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있고 단맛이 난다. 면발이 다른 곳에 비해 얇고 쫄깃하다.
○ 가격: 짜장면 5000원, 간짜장면·유니짜장면 6000원씩
○ 영업 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30분(둘째·넷째주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776-0508
○ 주소: 중구 남대문로 52-5(명동2가 107) 대한문화예술공사 
○ 주차: 불가

▶독자의 이야기
짜장면 너무 먹고 싶어 … 미국서 만든 ‘간장면’

2007년 우리 가족이 미국에 살 때였어요. 한국인이 드문 지역에 살았던 터라 주위에 한인마트나 식당이 없었어요. 그런데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스파게티 면을 끊여 익혔죠. 하지만 춘장 소스를 구할 길이 없었어요. 색깔이라도 짜장면과 비슷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간장과 소금을 넣어 비볐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이건 짜장면이다”라고 주문을 외우며 먹자고 했죠. 일종의 최면을 건 셈이었지만 그게 맛있을 리 없었죠. 짜장면은 자고로 면과 짜장 소스가 범벅이 돼야 하는데 제가 만든 건 색깔만 비슷했을 뿐 맛도 느낌도 그저 그랬어요. 결국 일주일 뒤 1시간 거리에 있는 한인타운의 중국집을 찾아 곱배기로 사 먹은 후에야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김경희(40·삼성동)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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