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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직격 인터뷰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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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창우(61)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왜 사법개혁이라는 단어를 입을 달고 살까. 법조삼륜의 한 축인 변협의 회장이 법원과 검찰을 향해 ‘낡은 관행 철폐’를 요구하고 나선 것 자체가 도발적이다. 삼수를 하면서까지 대한변협 회장직에 매달렸던 그가 꿈꾸는 사법개혁의 실체는 무엇일까. 대법관 퇴임 뒤 1년간의 석좌 교수 생활을 마치고 로펌에 영입된 차한성 전 대법관을 직접 찾아가 “변호사 개업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면서 그는 ‘전관예우’ 문제를 사회적 논란거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 회장은 대법관의 전관예우는 전관비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언행에 법원과 검찰은 평가절하를 시도하고 있다. “법률단체의 장이 법리적으로 문제를 풀지 않고 포퓰리즘적으로 행동한다”는 이유에서다. 직업 선택의 자유마저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하 회장이 전관예우 철폐에 모든 것을 거는 이유와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역삼동 대한변협 회장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하창우 회장은 “전관예우는 법을 따지기 이전에 근절해야 할 비리이며 범죄”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해 달라.

 “사법시험에 계속해 떨어져 사병으로 입대했다. 군 제대 후 시험에 합격했다. 1986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고용 변호사부터 시작했다. 첫 출발은 완전 밑바닥이었다. 당시 연수원을 나와 바로 변호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차별을 많이 받았다. 어떤 재판장은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연수원 출신이냐’며 비아냥조로 물어보더라. 설움을 받으면서 밑바닥부터 일을 해보니 법원과 검찰의 모순점이 보였다. 법관들이 욕을 하고 핀잔을 줘도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이건 사법제도가 아니다’고 생각했다. 1997년부터 변호사협회 일을 하기 시작했다. 2007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됐다. 당시 서울북부지법에서 부장판사가 연수원 출신의 변호사를 박대하고 불공정하게 재판을 해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8년 10월부터 서울변협이 법관평가를 시작했다. 법원 행정처장에게 평가결과서를 건네주기 위해 면담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대법원 민원실에 접수했다. 이 제도가 7년째 시행되면서 ‘법관평가 결과를 법원 인사에 참작할 수 있다’란 입법안이 발의됐다. 대한변협회장에 당선되면서 전관예우는 반드시 철폐하겠다고 다짐했다.”

 -법에 근거하지 않고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행동을 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전관예우를 방지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 이를 시행하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어느 세월에 하겠나. 언제 만들어질지도, 어떤 법일지도 모른다. 법조인들은 보통 머리가 영리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법을 만들어도 빠져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출구를 차단해야 한다.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대법관을 지낸 분들이 변호사 개업을 한다. 이제 법조계의 전관예우라는 풍토를 바꿀 시점이 온 것이다. 누군가 나서서 법을 따지기 전에 문제점을 부르짖고 출구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바뀐다. 입법을 기다리면 안 된다. 이번 일도 법률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앞으로 대법관을 지낸 분이 변호사 개업을 하기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출구를 막았으니 입구도 막을 것이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게 ‘대법관을 마친 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할 것을 요구했으니 지켜보자. ”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직업 선택의 자유는 어차피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다. (헌법적 가치라는) 미명하에 변호사 개업을 해 전관예우를 받아선 안 된다.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 더 큰 가치는 건전한 사법 풍토다. 국민들을 위한 법률서비스와 공익활동이 더 큰 가치다. 더 큰 가치를 위해 개인적인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차별이 필요하다. 변호사법의 수임제한 규정에다 ‘대법관을 역임한 자는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는 것은 합리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법리를 운운해선 안 된다. 이런 방식을 쓰지 않으면 전관예우를 근절하지 못한다.”

 -대법관 외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전관예우도 만만치 않은데.

 “그분들의 변호사 수입 형태를 파악할 것이다. 어떻게 조치를 취할 것인가는 앞으로 해 나갈 부분이다. 대법관이 전관비리의 중심이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전관예우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우선 하나의 큰 틀을 만들어 놓고 다른 부분은 세분화시켜서 기준을 만들려고 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전관예우가 유독 심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대법관의 숫자가 문제다. 대법원의 연간 사건 수가 3만6000여 건이다. 대법관 한 명이 3000여 건의 사건을 처리한다(※14명의 대법관 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이 재판 담당). 이로 인해 대법관의 가치나 몸값 등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몸값이 높기 때문에 퇴직 후에도 사건 수임이 되고 돈을 많이 벌게 된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대법관 수를 어느 정도까지 늘리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나.

 “대법관을 50명으로 늘려야 한다. 50명이 너무 많으면 지금의 세 배 정도인 38명이 적당하다고 본다(※대법관 12명의 세 배인 36명에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합한 수). 대법관 증원을 통해 대법원의 사건 부담을 지금보다 3분의 1로 줄여야 한다. 50명을 하면 더 줄어든다. 대법원은 숫자가 많으면 전원합의체에서 논의가 어렵다고 하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이제 대법관들도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판결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심리불속행(※재판을 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이 60~70%대나 된다. 심리불속행은 이유도 없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판결문도 제대로 써줘야 한다.”

 -법률적으로 대책이 없을까.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하는 대신 그분들에게 보상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예외적인 연금제도를 적용한다든지, 로스쿨 교수로 갈 수 있도록 로스쿨교수협의회에 협조를 구하는 방법도 있다. 입법 방안을 검토한 뒤 국회에 입법청원을 할 것이다. 법률구조공단·정부법무공단·국민권익위원회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방안도 좋다.”

 -입법이 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을 가능성도 있는데.

“대법관을 끝낸 사람이 헌법소원을 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간통죄가 위헌 결정 난 것처럼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과제는 공정함이다. 공정한 사회로 가야 하고, 평등하게 기회를 주는 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전관예우는 매우 공정하지 못하다. 월급 200만~300만원을 받으면서 일하는 젊은 변호사가 많다. 그런데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은 내용도 모르고 도장만 찍어주고 3000만원을 받는다. 젊은 변호사들이 이를 용납할까. 국민들이 용납할까. 이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대부분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대법원 사건 때문에 대출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에게 갖다 바친다. 이 돈으로 배불리 먹는 사람이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부는 내게 입법으로 해결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입법 여부를 놓고 또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로 가야 하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다.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제동을 걸고 이슈를 던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끌어내고 그렇게 해야 입법이 된다.”

 (※그는 ‘전관예우라는 악습은 타파돼야 한다’는 별도의 기고문을 통해 “어떤 여변호사는 대법원 사건을 맡기 위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게 도장값으로 3000만원을 먼저 줬다”면서 “하지만 의뢰인과 갈등이 생겨 수임료를 돌려주고도 자신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게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에 대해 평가하면.

 “본인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과거에 비해 많이 후퇴했다. 첫째, 대법관 구성이 다양하지 않다. 이전까지는 검찰·대학 교수·변호사 출신 등 사법부 구성의 다양화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췄다. 지금은 모두 판사 출신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의 재판관 15명은 법관 출신 6명, 변호사 4명, 검사 2명, 행정관료·외교관·대학 교수 각 한 명씩으로 구성돼 왔다. 정확한 비율이 정해져 있다. 다양한 가치관에 의해 판결을 내려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둘째, 대법원이 추진 중인 상고법원 설치도 국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기득권을 위한 제도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사법부가 상당히 보수화되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사법의 발전이고 민주화다. 법관의 좁은 견해로 어떻게 다양한 국민의 시각과 요구를 반영할 수 있겠는가.”

 -올 하반기 추진하려는 검사평가제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검사평가제는 법관평가보다 더 중요하다. 피의자의 인권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헌법상 보장된 피의자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지를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자백 강요·회유·구타 여부와 변호인과의 접견권을 제대로 보장했는지 등이 평가 기준이 된다. 수사검사 못지않게 공판검사에 대한 평가도 철저히 하겠다. 공판검사에 대한 불만이 예상외로 많기 때문이다. 재판 때 무성의하고 재판 준비도 하지 않고, 내용을 몰라 재판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검사와 다툼이 불가피한 변호사가 검사를 평가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일 수도 있는데.

 “법관평가를 시행할 때도 그런 말이 나왔다. 많은 사람이 나쁜 점수를 줄 때는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검찰이 수사의 주체자로서 형사소송법의 절차를 제대로 준수했는지, 아니면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수사를 했는지는 객관적으로 파악될 것이다. 평가서는 변협 차원에서 전국에서 수집하게 된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검찰총장 후보자 등이 나왔을 때 평가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검찰의 반응은.

 “아직까지 전혀 반응이 없다.”

 -최근 늘고 있는 변호사 비리에 대한 대책은 뭔가.

 “변호사 비리의 형태가 지능화되고 있어 현행 법률로 다스릴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런 사안은 강력한 징계 외에는 방법이 없다. 변호사 징계를 대폭 강화하겠다. 변호사의 징계 유형과 비위행위를 언론에 다 공개할 계획이다.”

 -2년간의 회장 임기가 끝난 뒤 정치 할 생각은 있나.

 “정치 할 뜻은 전혀 없다. 변협회장이 되고 나서 이슈를 계속 만들다 보니 내가 정치를 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

박재현 논설위원
사진=신인섭 기자

하창우는 …

1954년 경남 남해 출신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으로 혼자 유학을 왔다. 경남중·고교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양승태 대법원장의 7년 후배다. 사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6년 만에 사법시험 25회(83년)에 합격했다. 고용변호사로 5년간 일하다가 변호사 개업을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를 시작으로 대한변협 공보이사, 서울지회 회장을 거쳐 올 1월 48대 대한변협 회장에 당선됐다.

[인터뷰 후기] 법조계의 ‘어당팔’

그를 처음 보면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로 여길지 모른다. 농도 짙은 경상도 사투리와 몸에 밴 듯한 인사성 때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출신의 황우여 부총리 별명처럼 그 또한 법조계의 ‘어당팔(어리숙해 보이지만 당수는 팔단)’이란 느낌이 인터뷰가 끝날 즈음 확신으로 다가왔다. 5년의 고용변호사와 25년의 개업변호사를 하면서 판사와 검사들로부터 받은 괄시와 서러움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대한변협 회장이란 자리에 앉으면서 사법개혁이란 대의명분도 확실하게 챙기고 있었다.

 “전관예우는 범죄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과거의 상흔(傷痕)과 현재의 결기가 혼재해 있었다. 자신의 선배인 양승태 대법원장을 향해 “사법부를 후퇴시켰다”며 작심하고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는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난다는 것이다. 이 오페라는 사회의 관습에 저항하는 한 예술가의 초상을 표현했다. 스스로를 불행한 천재라고 믿었던 바그너를 따르고 싶은 것일까. 법원과 검찰을 향한 그의 외침이 임기 2년 동안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