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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식 기자의 새 이야기 ⑭ 동박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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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천지사방 꽃 소식이다. 꽃놀이는 언감생심인 사람까지도 묘한 설렘에 빠져들곤 한다. 꽃 타령 앞에서 꽃은 번식을 위한 생식기일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 까칠한 시절 그토록 환한 미소를 날려주는 주는 이가 또 어디에 있다고.

꽃을 탐하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랴. 봄바람마저 달콤한 미소를 흩날리며 꽃길을 드나든다. 꽃을 향한 욕망은 저들의 주체적 결정 같지만, 실상은 꽃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식물의 관심은 번식에 집중돼 있고, 첫 과정인 가루받이를 위한 고도의 전략을 갖고 있다. 바람과 곤충을 이용하기도 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새를 유인하기도 한다.

동백은 조매화(鳥媒花)로 손꼽힌다. 벌·나비도 없는 한겨울, 동백이 배짱 좋게 꽃잎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잊지 않고 찾아오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동박새다. 참새보다 작은 이 새는 몸 윗면은 연녹색, 배는 하얀색이며 눈 테두리가 하얀 것이 특징이다.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쉽지 않지만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는 텃새다. 제주도에서 동백나무는 ‘동박낭’으로, 동박새는 ‘동박생’이라 부를 정도로 둘은 이름부터 닮았다.

동백꽃은 깊숙한 곳에 화밀을 감춰놓는다. 그러기에 길고 가는 부리를 가진 새만이 꿀을 만끽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수분(受粉)이 이뤄진다. 동박새는 추운 겨울을 살기 위해 열량 높은 꿀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를 공생이라고 한다. 열매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합이다. 그것이 세계의 본질이다. 너와 내가 서로 기대어 사는 것.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의 모습을 동백꽃과 동박새에서 본다.

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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