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꽃이 춤추고 숲이 노래하고 … 거칠고 순결한 품에 안겨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전남 순천에 있는 월등마을의 봄 풍경이다. 순천에서도 내륙 쪽으로 붙은 월등마을은 봄이 되면 무릉도원이 된다. 산에 야생화가 만발하고 마을은 복사꽃으로 뒤덮인다.

이원근(39)씨의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는 국내 오지마을 55곳을 정리한 가이드북이다. 책에서 소개한 전국의 오지 중에서 계절마다 두 곳씩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고민 끝에 그는 8개를 꼽았다. 아직도 오지로 남아있는 곳도 있고, 이제는 제법 알려진 곳도 있었다. 기준은 애오라지 하나였다. “우리가 꿈꾸는 오지가 있다면 바로 이러할 것이다.”

동강할미꽃은 강원도 정선 귤암리에서만 볼 수 있다.

강원도 정선 양치재 동강할미꽃의 탯자리

양치재는 정선군 정선읍 광하리 망하마을에서 귤암리로 가는 고갯길이다. 차량이 통제된 옛길이라 한적하고, 소나무가 우거져 산책하기에 좋다. 봄이 되면 양치재 옛길 길섶에 야생화가 만발한다. 백미는 동강할미꽃이다. 동강할미꽃은 귤암리에서만 볼 수 있다. 3월 말에서 4월 초 동강을 따라 늘어선 벼랑에 매달려 꽃이 핀다. 다른 할미꽃은 머리를 숙이지만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뻗는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고 여린 꽃이 바위틈을 비집고 피어난다. 1997년 최초로 발견된 동강할미꽃 때문에 동강댐 개발이 취소됐고, 매년 4월이면 이 꽃을 찍겠다고 전국에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몰려든다.

●여행정보=영동고속도로~새말IC~국도 42호~정선읍 광하리. 서덕웅 동강할미꽃보존회 회장 010-6322-5611.

전남 순천 월등마을 복숭아꽃 흐드러지는 산골

4월 말이면 순천 월등마을에 있는 복숭아 나무에 꽃이 만발한다.

순천에는 순천만·송광사·선암사 등 유명 관광지가 많다. 순천의 다른 명소 제쳐 두고 생소한 월등마을을 소개하는 이유는 복숭아꽃 때문이다. 분홍색 복사꽃 물결이 일렁이는 풍경은 1년 중 4월 말에서 5월 초 약 2주 사이에만 볼 수 있는 비경이다. 순천시 월등면은 순천에서도 북쪽에 있다. 전남 곡성군과 맞닿아 있고, 구례군과도 가깝다. 10개 법정 리(里)가 속해 있고, 인구도 2000명이나 되는 월등면을 오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직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다. 월등면을 관통하는 길이 857번 지방도로다. 옛날에는 순천에서 구례를 오가는 주 도로였지만, 2011년 순천완주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통행량이 뚝 떨어졌다.

●여행정보=완주순천고속도로~황전IC~국도 17호~857번 지방도. 순천시 월등면사무소 061-749-8081.

4월 말이면 순천 월등마을에 있는 복숭아 나무에 꽃이 만발한다.

강원도 인제 대간령 첩첩산중 속 비밀의 장터

대관령의 오타가 아니다. 인제군 용대리에 있는 대간령은 인제군과 고성군을 잇는 고개다. 진부령과 미시령에 길이 뚫리면서 발길이 뜸해졌고, 1970년대 정부가 산촌 주민 이주정책을 펴면서 길이 통제됐다. 지금은 오지여행가가 종종 옛길을 걸으러 찾아온다. 대간령 옛길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박달나무쉼터에서 시작해 작은새이령을 지나 마장터를 거쳐 대간령 정상까지 갔다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약 8㎞ 코스다. 마장터 가는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마장터는 옛날 영동 사람과 영서 사람이 만나 시장을 열었던 자리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말(馬)이 거래됐던 장이다. 옛날에는 이 첩첩산중에 3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여행정보=서울양양고속도로~동홍천IC~국도 44호~국도 46호. 인제군 북면사무소 033-461-3301.

강원도 횡성 고라데이 마을 이름이 골짜기라네

폭포 소리가 봉황 우는 소리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봉명(鳳鳴)이끼폭포.

고라데이 마을은 횡성군 청일면 봉명리 발교산 동쪽 골짜기에 붙어 있다. ‘고라데이’는 강원도 사투리로 골짜기를 뜻한다. 70여 년 전 화전민이 들어와 처음 마을을 일궜고, 현재는 주민 153명이 밭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이 마을은 현재 산촌 체험마을로 거듭났다. 2006년부터 화전 움막 체험, 심마니 체험 같은 산촌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마을은 비경을 품고 있다. 마을 깊숙한 곳에 숨겨진 봉명이끼폭포다. 폭포까지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마을에서 원시림이 뒤덮은 골짜기와 임도를 따라 1시간 정도 들어가야 한다. 1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이끼로 뒤덮인 기암괴석을 때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린다.

●여행정보=서울양양고속도로~동홍천IC~국도 56호~국도 19호. 고라데이 마을 체험관 033-344-1004.

영양 대티골에는 금강송이 우거진 호젓한 산책로가 나 있다.

경북 영양 대티골 금강송 우거진 두메

대티골은 영양군 일월산 자락에 들어선 후미진 산골이다. 경북 봉화군과 맞닿은 대티골에는 현재 주민 약 60명이 살고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에는 10가구밖에 없었다. 대티골 주민은 산에서 뜯은 나물과 밭에서 키운 고추를 내다 팔아 근근이 살았다. 대티골이 변화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였다. 주민이 합심해 산마늘을 키우며 수입을 올렸고, 2009년에는 지자체 지원금을 받아 집마다 황토방을 만들었다. 경북 내륙 깊숙이 위치한 대티골은 예부터 숲이 우거졌다. 일제강점기 일월산 일대 금강소나무가 무자비하게 벌목된 아픈 역사도 있지만 대티골은 워낙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어서 보존이 잘 돼 있다.

●여행정보=중앙고속도로~풍기IC~36번 지방도~31번 지방도. 김승규 대티골 이장 054-683-0669.

강원도 인제 연가리 최고의 단풍 여행지

한국전쟁이 일어난지도 몰랐다는 연가리는 가을 단풍여행으로 가기 좋다.

먼저 ‘삼둔사가리’를 알아야 한다. ‘둔’과 ‘가리’는 사람이 살만한 둔덕과 계곡을 일컫는 순우리말로, 삼둔사가리는 둔 3개와 가리 4개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삼둔사가리에는 방태산 남쪽 내린천 상류의 살둔·월둔·달둔과, 방태산 북쪽 방태천 계곡의 적가리·아침가리·연가리, 방태산 동쪽의 명지가리가 들어간다. 이 삼둔사가리는 강원도에서도 손꼽히는 오지다. 연가리에는 국내 최고의 단풍 계곡이 있다. 연가리 단풍을 보고 나면 다른 단풍은 눈에 안 들어온다고 말할 정도다. 연가리 입구에서 시작하는 계곡 트레킹은 왕복 2시간이 걸린다. 좁은 길 주변으로 단풍나무 숲이 하도 우거져 걷는 동안 하늘을 거의 볼 수 없다.

●여행정보=서울양양고속도로~동홍천IC~44번 지방도~국도 31호. 인제군 기린면사무소 033-461-5005.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 마을 산과 물에 가로막힌 오지

비수구미 마을의 겨울 풍경. 꽁꽁 언 파로호를 오토바이 썰매가 달린다.

화천 파로호 상류에 위치한 비수구미도 오지 중의 오지다. 네 가구만 사는 이 마을에 들려면 계곡길을 따라 6㎞를 걷거나 배를 타고 파로호를 건너야 한다. 봄에는 지천으로 산나물이 자라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이 맞이한다. 단풍 계곡길을 걸어서 내려가는 가을도 좋지만, 비수구미의 진가는 겨울에 드러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비료 포대를 타고 달리고, 꽝꽝 언 호수 위에서 얼음 썰매를 타고, 얼음을 뚫고 빙어를 낚는다. 우리네 옛 겨울 풍경이 비수구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70년대 비수구미에 정착한 장윤일(71)·김영순(65)씨 부부가 민박을 치고 음식을 판다.

●여행정보=서울춘천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춘천IC~461번 지방도~해산령 쉼터. 해산령쉼터에서 걸어서 2시간이 걸린다. 비수구미 민박 033-442-0145.

강원도 강릉 안반덕 허리까지 눈이 쌓이는 설국

겨울이 되면 안반덕 마을은 온통 눈에 덮여 버린다.

안반덕은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다. 이 마을과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를 이어주는 고개가 피덕령이다. ‘안반(案盤)’은 떡을 메칠 때 쓰는 떡판을 일컫고 ‘덕’은 평평한 고원을 뜻한다. 분화구처럼 정상이 오목하게 파인 평원이 하늘과 경계를 짓는다. 안반덕 배추밭은 약 198만㎡(60만 평)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고랭지 배추밭이다. 푸르게 물결치던 배추밭이 겨울에는 순진무구한 설국으로 변신한다. 안반덕에 사람이 정착한 건 60년대였다. 당시 정부가 화전민을 안반덕에 모으고 고랭지 농사를 짓게 했다. 불모지였던 평원이 지금은 고랭지 배추 주산지로 거듭났다.

●여행정보=영동고속도로~강릉IC~456번 지방도~국도 35호~410번 지방도. 강릉시 왕산면사무소 033-660-3541.

정리=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이원근

[관련 기사] [커버스토리] 1면
[커버스토리] 사시사철 별천지 … 시간도 쉬어가네

[관련 기사]
경북 영양 대티골 │ 그 길 속 그 이야기 <44> 경북 영양 외씨버선길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 마을 │ 호수 위 모닥불에선 빙어가 익어갑니다
강원도 강릉 안반덕 │ 뽀드득뽀드득 … 겨울 산하가 깨어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