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0초 내에 한 명씩 선수 선발" 대입 뺨치는 눈치작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KB 바둑리그 선수 선발식에 참석한 팀 감독과 관계자가 올해 함께할 선수를 뽑고 있다. 왼쪽부터 CJ E&M 함준일 방송정책심의팀장과 윤현석 감독, 포스코켐텍 이요한 매니저와 김성룡 감독. [사진 한국기원]

째깍거리는 초시계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10, 9, 8, 7….” 진행을 맡은 김지명 바둑TV 캐스터가 남은 초를 세며 선택을 독촉한다. 마지막까지 고민한 감독은 결심한 듯 마이크를 잡아들고 선수의 이름을 부른다. 비어 있던 선수 명단에 프로 기사들의 이름이 채워진다.

 지난달 31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2층 대국장에서 201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차 선수 선발식이 열렸다. ‘티브로드’ ‘신안천일염’ ‘포스코켐텍’ 등 명패가 놓인 아홉 개의 테이블마다 팀 감독과 관계자 서너 명이 자리했다. 프로 기사와 기자단까지 70여 명이 대국장을 빼곡히 채웠다.

 선수 선발에 앞서 보호 선수가 발표됐다. 보호 선수는 팀별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같은 팀에서 뛰도록 남겨둔 선수를 말한다. 올해부터 팀마다 다섯 명까지 보호 선수를 둘 수 있다. 지난해 통합 우승팀인 티브로드와 정규 리그 2위 팀인 CJ E&M은 지난해 멤버 다섯 명을 그대로 남겼다. SK엔크린은 박영훈 9단·안성준 6단을 보호 선수로 택했다. Kixx와 신안천일염, 화성시코리요는 각각 김지석 9단, 이세돌 9단, 최철한 9단을 지켰다. 포스코켐텍과 정관장황진단은 보호 선수 없이 전부 새로 뽑기로 했다.

 선수 선발이 시작되자 긴장이 감돌았다. 한 명을 뽑을 때마다 주어진 시간은 60초. 보호 선수가 없는 포스코켐텍과 정관장황진단, 신생팀인 한국물가정보부터 주장인 1지명 선수를 뽑기 시작했다. 모니터 화면의 초시계가 60초를 거꾸로 세기 시작하고 포스코켐텍 김성룡 감독이 나현 6단을 호명했다. 정관장황진단 김영삼 감독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창호 9단을 택했다. 예상 밖의 지명에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후 김 감독은 “정신적인 지주로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9단의 현재 전력을 감안하면 다소 파격이다. 보통 1지명은 팀에서 최강자가 맡는다. 한국물가정보 한종진 감독도 올해 입단한 송지훈 초단을 5지명으로 임명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이어 2부 리그인 퓨처스리그까지 숨 가쁘게 선수 선발이 진행됐다. 팀 감독과 관계자들은 최선의 선택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후보 선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재차 뒤적이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비밀리에 작전을 짜듯 손바닥에 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 지명 순서가 다가오면 결정한 선수를 신중하게 호명했다. 간혹 다른 팀의 앞선 지명에 당황한 듯 60초를 채워 장고하는 감독도 있었다.

 오후 5시쯤 바둑리그 1~5지명 선수 45명과 퓨처스리그 1∼2지명 선수 18명 등 63명의 거취가 결정됐다. 퓨처스리그 3지명 선수의 소속은 8일 2차 선수 선발식에서 결정된다. 선발을 마치고 Kixx 김영환 감독은 “티브로드와 CJ E&M이 강해 보이는데 이들을 견제하면서 지난해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화성시코리요 이정우 감독은 “우리 팀에 민상연 3단, 박정상 9단 등 유쾌한 선수가 많아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며 “4강을 목표로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21일 개막하는 2015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올해부터 운영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지난해보다 팀이 하나 늘어 9개 팀이 경기를 치르다 보니 일정이 빠듯한 탓이다. 하루에 한 세트의 경기를 치르는데, 장고 1대국, 속기 4대국으로 구성된다. 지난해에는 이틀에 한 세트 경기(장고 3대국과 속기 2대국)였다. 또 장고 대국의 제한 시간도 기존 1시간30분(초읽기 40초 5회)에서 1시간(초읽기 1분 1회)으로 줄었다. SK엔크린 최규병 감독은 “이틀에 걸쳐 나던 승부가 하루에 결정되니 박진감이 생기고 선수들 집중력도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KB국민은행 바둑리그=국내 최대 규모 기전. 2003년 6개 기업이 참가한 한국드림리그에서 출발해 2006년부터 KB국민은행이 메인 타이틀을 후원하고 있다. 9개 팀이 총 18라운드, 72경기를 통해 정규 리그 순위를 정하고, 상위 4개팀이 포스트 시즌에서 최종 승자를 가린다. 총상금 규모 34억원, 우승과 준우승 상금은 각각 2억원, 1억원이다.

▶ [바둑] 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