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음식] 주먹밥, 영화 ‘카모메 식당’ 중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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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는 핀란드의 한 골목에서 오니기리(주먹밥)를 만들어 파는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그는 ‘주먹밥=고향의 맛’이라고 믿기 때문에 연어·매실장아찌 같은 일본 전통재료만 사용한다. 맨 오른쪽 주먹밥 사진은 표길택 리츠칼튼서울 일식당 하나조노 셰프가 영화 속 주먹밥을 재연한 것이다. 구운 연어와 무·실파를 다져 마요네즈와 잘 섞은 후 배합초를 버무린 쌀밥 안에 넣었다.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오니기리(주먹밥)입니다.

 고향의 맛.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가 오니기리를 표현한 말입니다. 오니기리는 1000년 전부터 일본에서 즐겨 먹던 음식입니다. 누구나 즐겨 먹는 소박하면서도 평범한 메뉴여서 친근하죠. 격한 갈등이나 눈살 찌푸리게 하는 ‘막장 드라마’식의 전개 없이 흐르는 영화와도 꼭 닮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를 보고 나면 고향의 맛처럼 익숙한 가족과 친구들, 또 이들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1 핀란드에서 홀로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 우연히 서점에서 만나 함께 지내게 된 미도리는 그에게 왜 핀란드에서 일본음식을 파는 식당을 하는지 묻는다.

사치에: 소박해도 맛있는 음식을 여기(핀란드)에선 왠지 알아줄 것 같아서요.
미도리: 어떤 이유로요?
사치에: 이탈리아 하면 피자와 파스타잖아요. 독일은…
미도리: 소시지?
사치에: 한국은 불고기와 김치, 인도는 카레.
미도리: 태국은 똠양꿍, 미국은 햄버거죠.
사치에: 그리고 핀란드 하면....
미도리: 연어?
사치에: 바로 그거죠. 일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아침 메뉴는 뭐죠?
미도리: 연어구이.
사치에: 그거 봐요. 일본 사람 핀란드 사람 모두 연어를 좋아해요.
미도리: 듣고보니 그렇네요.
사치에: (중략) 사실은요.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핀란드)라면 나도 살아갈 수 있겠다. 근데 손님이 하나도 안 오네요.

#2 식당을 찾는 손님이 없자 미도리는 시장에서 핀란드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가재·순록·청어를 사와 주먹밥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미도리: 저 오니기리 말인데요. 요즘은 일본에서도 편의점에 가보면 참치마요네즈 같은 퓨전식이 더 많잖아요. 일본 젊은이들도 매실 같은 거 싫어하는데 핀란드 사람은 더하지 않을까요.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걸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가재랑 청어랑 순록고기도 샀어요. 저는 손님이 많이 와서 오니기리가 잘 팔리면 좋겠어요.
사치에: 알았어요. 시험 삼아 만들어보죠.
(오니기리 만드는 사치에와 미도리, 구경하는 이웃 주민 토미)
사치에: 그럼 먹어볼까요. 순록고기부터. (맛을 본 후) 아무리 여기 사람들이 느끼한 걸 잘 먹어도 이건 좀.
미도리: 우리가 일본인이라 그래요. 핀란드 사람들은 좋아할지도 몰라요.
(순록고기로 만든 오니기리를 맛본 토미의 표정이 굳는다)
사치에: 그럴 것 같지 않네요. 다음은 청어를 먹어보죠.
미도리: 네. 이건 그나마 오니기리에 잘 어울리는데요.
사치에: 아뇨. 청어는 그대로 먹는 게 더 맛있어요. 밥이랑 섞으니 비린내가 더 심해져요.
(청어 오니기리를 먹은 토미의 얼굴이 굳는다)
사치에: 가재도 좀.
미도리: 맛이 없나요?
사치에: 그게 아니라 역시 주먹밥은 일본 전통 재료가 최고예요. 핀란드 아니라 어디라도요.

바쁜 직장이나 먼 해외에서도 간편하게
일본에선 '오니기리' 무사 비상식서 유래
배합초 들어가 한국보다 보관 기간 길어

영화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 2006년)’은 사치에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파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 푸른 숲에 둘러싸인 나라 핀란드. 핀란드 사람들은 여유가 있다. 사치에는 이곳에 일본어로 갈매기를 뜻하는 ‘카모메’라는 이름의 식당을 연다. 그러나 문을 연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손님이 없다. 세 명의 핀란드인 할머니는 가게 문밖에서 텅 빈 가게를 보며 킥킥거린다.

 사치에는 그래도 꿋꿋이 매일 아침 음식을 준비한다. 눈 감고 세계지도를 펼친 후 손가락으로 찍은 곳인 핀란드를 찾아 온 미도리,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려 핀란드에 머물게 된 마사코까지 식당의 식구가 늘고 식당을 찾는 손님도 하나둘 늘어간다.

 영화는 이들이 행복과 희망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2006년 일본 개봉 당시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 단 2개 관에서 개봉했다가 입소문을 타고 100여 개 관으로 확장 개봉했다. 핀란드 여행 상품 문의가 쏟아졌고 패키지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국내에서도 2007년 영화가 정식 개봉되기 전부터 화제가 됐다. 영화 속 오니기리를 파는 프랜차이즈 식당도 생겼다. 영화와 동명의 식당인 ‘카모메(2008년)’ ‘오니기리와이규동(2009년)’ ‘공씨네주먹밥(2009년)’ 등 주먹밥 전문 프랜차이즈가 잇달아 문을 열었고 현재까지 꾸준히 매장 수를 늘리며 영업 중이다. 이들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맛의 오니기리로 저렴한 한 끼 식사의 대명사인 김밥의 틈새 시장으로 떠올랐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음식이다. 일식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화려하고 예쁜 요리가 아니라 주먹밥·돈까스·연어구이처럼 가정에서 즐겨먹는 소박한 음식들이다. 대표적인 요리가 바로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여읜 사치에는 모든 집안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런 그녀에게 1년에 딱 2번, 아빠가 만들어 주는 요리가 바로 오니기리였다. 사치에는 “운동회하고 소풍 때였어요. 계란말이나 소시지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하나도 없었고. 연어, 매실, 말린 생선을 넣은 주먹밥 세 개뿐이었죠. 크고 볼품없었지만 너무 맛있었어요”라고 회상한다.

 오니기리는 일본에서 누구나 즐겨 먹는 요리다. 표길택 리츠칼튼 서울 일식당 하나조노 셰프는 “오니기리는 잘 만들어야 하는 그런 어려운 요리가 아니라 누구나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요리”라고 설명했다. 오니기리의 역사는 1000년 전인 헤이안(平安)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사들이 볶은 밥이나 말린 밥으로 만든 주먹밥을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던 데서 유래했다. 19세기에 이르러 흰 쌀밥으로 오니기리를 만들게 됐고 2차 세계대전 후 대중화됐다. 우메보시(매실장아찌), 다시마 간장조림, 참치, 연어구이 등을 넣어 만든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는 다양한 종류가 있어 골라 먹을 수 있는 데다 값이 저렴하고 이동하면서 먹을 수 있는 편의성 때문에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오니기리와 한국의 주먹밥은 맛이나 모양은 비슷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바로 배합초다. 표 셰프는 “일본 요리는 전반적으로 식초를 많이 활용한다. 오니기리에는 식초에 설탕·소금을 넣어 만든 배합초를 섞어 밥의 맛을 더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배합초는 정해진 비율이 없다. 각 가정마다 선호하는 비율이 다르다.

연어 주먹밥 만드는 법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니기리 안에 넣는 재료 역시 다양하다. 예전에는 기본적으로 매실장아찌를 넣었다. 매실이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해주고 짭조름한 맛이 나 간을 맞추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매실의 아삭한 식감은 씹는 재미를 더한다. 모양은 삼각형 형태로 만들어 김을 붙이는 게 기본이지만 이 또한 정해진 건 없다. 각자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독자의 이야기

완벽한 내가 딱 하나 못했던 것

요리를 못하는 제가 결혼 전 처음으로 남편에게 해주었던 요리가 바로 주먹밥이었어요. 같이 캠핑을 가기로 했는데 도통 김밥은 못 싸겠더라고요. 그래서 주먹밥을 만들었죠. 그런데 정말 제가 생각해도 엉망이었어요. 부끄러워 내놓지도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눈치채고 먼저 “맛있다”며 먹더라고요. 참 고마웠죠. ‘요리 솜씨 없는 나랑 살아도 잘 살 남자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나중에 남편이 그러는데 그때 뭐든 다 잘하는 여자친구의 ‘단 하나의 단점’을 보고 놀랐다네요.

 이젠 결혼해서 남편이 주먹밥을 제게 만들어줘요. 자기가 만들어야 예쁘고 맛있다면서요. 남편표 주먹밥의 맛의 비결은 딱 맞는 간입니다. 밥에 소금과 후추를 적당량 넣어 간을 잘 맞춥니다. 또 김을 잘라 주먹밥에 둘러주고 무청을 잘라 새싹처럼 보이도록 위에 꽂아줍니다. 알고보니 모두 시어머니의 노하우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주먹밥 잘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깜짝 놀래켜주고 싶어요.

강미숙(34·고양시 행신동)

서울의 주먹밥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주먹밥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 롯데호텔서울 일식당 모모야마 정병호 조리장, 리츠칼튼서울 하나조노 표길택 셰프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利밥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어, 먹고 나면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 특징: 한 번에 8명의 손님만 받을 수 있는 작은 식당으로 한식과 일식을 섞은 퓨전 요리를 선보인다. 2010년 ‘몸에 이로운 밥’이라는 뜻의 간판을 달고 처음 시작했다. 당시 단골손님이던 지금의 사장이 2013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메뉴는 한국식 주먹밥인 ‘이밥’, 일본식 오니기리인 ‘저밥’, 일본식 덮밥을 뜻하는 ‘덮밥’ 등 크게 3종류로 나뉜다. 추가 요금을 내고 세트 주문을 하면 샐러드·미소된장국·미역반찬 등이 함께 나온다.
○ 가격: 연잎 주먹밥 5500원, 소고기고추장 주먹밥 3500원
○ 영업 시간: 오전 7시30분~오후 9시(수·토요일은 오후 4시까지, 일요일·공휴일 휴무)
○ 전화번호: 02-744-2325
○ 주소: 종로구 창덕궁1길 29(계동 140-49)
○ 주차: 가게 앞 주차 가능

길손

“일본식 선술집 특유의 분위기가 좋고, 참기름을 발라 바삭하게 구운 주먹밥을 김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다”

○ 특징: 2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본식 선술집이다. 표고버섯·왕새우·삼치·오징어·꽁치·도루묵 등 온갖 구이요리를 선보인다. 이 중에서도 은은한 불에 장시간 구워 겉은 바삭하고 안은 찰진 주먹밥이 가장 인기다. 테이블 4개와 바밖에 없는 작은 식당이지만 아담한 분위기에 친구와 함께 수다 떨며 술잔을 기울이기 좋은 곳이다.
○ 가격: 주먹밥 6000원
○ 영업 시간: 오후 6시~오전 1시(첫째·셋째주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546-1247
○ 주소: 강남구 논현로175길 40(신사동 574-8) 1층
○ 주차: 불가

당고집

“간편하게 속을 채우기 위해 가기 좋은 곳이다. 주먹밥은 크기가 클 뿐 아니라 맛도 좋아 일석이조다”

○ 특징: 간장·단팥·녹차·당고 등 일본식 디저트를 파는 카페다. 오니기리는 평일에만 판매하는데 다른 가게에 비해 크고 단단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오니기리를 주문하면 진한 미소국을 함께 내준다. 아담한 가게는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져 있어 여자 손님들에게 더 인기다. 주택가에 있어 찾기 어려운 만큼 미리 지도를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 가격: 쇠고기 오니기리 2700원, 오징어채·우메보시 오니기리 2500원씩
○ 영업 시간: 정오~오후 10시(명절 휴무)
○ 전화번호: 070-7573-3164
○ 주소: 마포구 어울마당로3길 5(합정동 356-9) 1층
○ 주차: 불가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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