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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재창출 실패 가장 아쉬워 매일 남산 3시간 산책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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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형우 전 의원은 1997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지난 25일 인터뷰는 부인 원영일 여사를 통해 이뤄졌다. [강정현 기자]

“수고합니다.” 백발을 2대 8 가르마로 단정히 빗어 넘긴 최형우(80) 전 의원이 반갑게 손을 들며 웃었다. 1971년 야당인 신민당 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그다. 91년 작고한 김동영 전 의원과 함께 YS의 ‘좌(左)동영, 우(右)형우’로 불렸던 최 전 의원은 97년 대선 출마를 꿈꾸던 중 그해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지며 정계를 떠난 불운의 정치인이다.

 지난 25일 서울 장충동 자택에서 만난 최 전 의원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쓰러진 뒤부터 13년간 매일 재활 치료를 해오다 5년 전부터는 통원 횟수를 일주일에 3회로 줄였다고 했다. 오른쪽 반신이 불편하나 혼자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의사들은 “기적 같다. 초인적인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고 옆에 앉은 부인 원영일(74) 여사가 전했다. 다만 뇌 수술의 후유증으로 언어 능력 회복엔 한계가 있어 인터뷰는 원 여사를 통해 이뤄졌다. 최 전 의원은 부인의 말을 듣다가 “그래”라고 맞장구를 치거나 “아니야”라며 손사래를 치는 식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97년 3월을 떠올리기 싫겠다.

 “가장 아쉬운 점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이다. 얼마 전 길을 가는데 얼굴도 모르는 어르신이 다가와 ‘최 전 의원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하더라.”

 -개인적 아쉬움은.

 “평생 숙원이던 ‘온산(최 전 의원의 아호) 장학회’ 설립을 완수하지 못한 거다. 96년 서예 전시회로 1억5000만원을 모아 장애인 자녀들을 위해 써 달라고 단체에 맡겼다. 당시 3억원(현재 2억원)이면 법정 장학회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 뒤로 활동을 못해 더 모금하지 못했다.”

 최 전 의원은 80년대 초 정치 규제에 묶였을 당시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선생으로부터 5년간 서예를 배웠다. 뇌경색 이후 오른손을 쓰지 못해 서예를 접었다. 서예 얘기를 듣던 최 전 의원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눈물도 고였다. 원 여사는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안 되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치인 시절 매일 아침 산을 찾던 최 전 의원은 요즘도 오전 3시간가량 남산을 산책한다. 원 여사가 산을 좋아하는 최 전 의원을 위해 98년 장충동으로 이사한 덕분이다. 틈틈이 민주산악회 회원 등 과거 동지들과도 만난다. 올 1월 1일엔 100여 명이 세배를 왔단다.

지난 24일 열린 헌정회 회장 투표에도 참석했다. 원 여사가 “이 양반이 신경식 전 의원을 지지했는데 당선됐어요”라고 하자 최 전 의원은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현관까지 배웅을 나온 최 전 의원의 등 뒤로 ‘常樂我淨(상락아정)’이란 서예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불교 용어로 열반의 상태에서 느끼는 네 가지 덕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초 선생이 “정치에서도 열반 같은 경지에 이르라”며 권해준 어구란다. 최 전 의원의 표정이 바로 상락아정이었다.

글=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최형우(80) ▶부산 공고-동국대 ▶8~10대, 13~15대 의원(6선) ▶정무장관 ▶민자당 사무총장 ▶내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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