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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베의 궤변에 워싱턴이 넘어가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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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7일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민간 소행으로 돌리며 일본 정부·군의 개입을 은폐하려는 술수다. 아베가 다음달 29일 일본 총리로선 처음 미 상·하원에서 합동연설을 앞두고 이런 궤변을 했다는 데서 심각성이 더하다.

 위안부에 관한 한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강제적인 성노예’ ‘극악무도한 인권침해’라 규탄할 만큼 강경한 입장이다. 아베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상·하원 연설에서 위안부를 언급하되 ‘인신매매 희생자’란 물타기식 표현으로 빠져나가려 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는 그런 속셈 아래 미국의 반응을 미리 떠보려는 계산된 발언으로 보인다.

 문제는 아베가 상·하원에서 이런 궤변을 하더라도 미국이 넘어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협력이 절실한 나머지 “큰 틀에서 위안부 존재를 인정한 것”이라며 면죄부를 줄 우려가 있다. 자신감을 얻은 아베는 과거사 독주와 집단적 자위권 확대를 거침없이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전방위 외교를 펼쳐야 한다. 아베의 연설에 과거사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포함돼야 하지만, 우선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궤변부터 차단하는 게 시급하다. 위안부 문제는 1993년 일본 정부 스스로 고노(河野)담화를 통해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사안이며, 한국을 배제한 미·일 동맹만으론 ‘아시아 회귀’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미국에 이해시켜야 한다.

 미 의회도 궤변이나 듣자고 아베에게 첫 합동연설 기회를 준 것은 아닐 것이다. 8년 전인 2007년 미 의회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잔학성과 규모에서 전례 없는 세기의 범죄’로 규탄하는 결의안 121호를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일본 총리의 주장은 강변에 지나지 않는다”며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총리는 아베 신조, 바로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