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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먼윙스 조종사, 우울증과 시력 장애 앓아

중앙일보

입력

독일 저먼윙스 9525편을 추락시킨 안드레아스 루비츠 부기장에 대한 수사가 그의 병력에 집중되고 있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28일(현지시간) “수사 당국이 루비츠의 자택에서 정신질환 치료 약물을 다수 발견했으며 그가 정신질환을 앓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신경과와 정신과 의사들로부터 수차례 진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또 시력 때문에 병원을 찾았던 사실도 확인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루비츠가 시력 문제도 회사에 숨긴 것으로 보인다”며 “7월 갱신 예정인 비행자격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고 했다. 앞서 독일 수사당국은 루비츠가 자신의 질환을 회사에 숨겼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병력과 사고의 연관성이 부각되면서 ‘정신질환자의 고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희생자 가족들이 “루프트한자가 자신들의 조종사를 더 살폈어야 했다”는 목소리를 냈다. 영국 언론인으로 한때 CNN의 토크쇼를 진행했던 피어스 모건은 “우울증 환자에게 비행기를 몰 게 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종사를 포함, 다수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을 하는 직종에선 곤란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조종사들 스스로도 압박을 느끼는 듯했다. 미국 델타항공에 탔던 한 승객은 자신의 트위터에 “기장이 ‘나와 부기장 모두 제대군인들로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행복하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방법론적인 어려움이 있다. 우선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질환의 범위가 넓다. 그러니 해당자도 많다. WSJ는 “유럽인의 27%, 미국인의 25%가 알코올 의존이나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기업으로선 개인 병력을 알기 어렵다. 특히 서구에선 철저히 비밀로 보호한다.
그렇더라도 의학 검진 과정에서 정신 건강을 보다 철저히 체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선 여러 차례 40세 이하 조종사들의 우울증·불안·약물남용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터였다. 2012년엔 개정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EU 차원에선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EU 관계자는 그러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젠 (관련 규정이) 분명히 바뀔 것이라고 장담한다”고 말했다.

EU의 우울증 규정 자체가 강화될 수도 있다. 지금은 우울증 증세가 없어지고 최소 4주 후부터 상업비행을 할 수 있다. 항우울증약을 복용하는 중에도 가능하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와 관련 “영국의 상업비행 조종사 100명 정도가 우울증 전력이 있고 42명은 약을 복용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영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사이먼 웨슬리는 “내가 치료한 조종사 2명은 아주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며 “한 번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절대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잘못이다. 누군가 팔을 부러뜨린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식”이라고 말했다. ‘우울증 자체를 죄악시하지 말라’는 얘기다. 또 규제를 하게 되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치료를 꺼리거나 질환을 가졌다는 사실을 숨겨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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