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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략] ‘본전’ 생각한 미국, 베트남 철군 미루다 수렁 속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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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28면

1973년 3월 29일 사이공 베트남군사지원사령부(MACV) 해산식에서 미군 장병이 성조기를 접고 있다. [AP Photo/Charles Harrity, File]

지금으로부터 꼭 42년 전인 1973년 3월 29일은 미국이 베트남 주둔 전투부대를 철수하고 종전(終戰)을 선언한 날이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손을 뗀다는 의미뿐 아니라 미국 정부 스스로 패전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미국은 질 전쟁에 왜 개입했을까. 근본적인 대답은 질 줄 몰랐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60년대 베트남에서 다른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14> 지는 것도 전략이다

전쟁은 적어도 패전국에게, 어떤 경우엔 승전국에게도 손해인 선택이다. 쌍방에게 모두 손해인 전쟁이 쌍방 모두 최선을 선택한 결과일 때도 있다. 각 선택이 실제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전(事前)적으로 최선의 선택이더라도 실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승리 효용성 크지 않았던 베트남전
불확실성을 감안해 각 선택별로 향후 결과를 사전에 전망하는 기초적인 계산은 기댓값 계산이다. 부에노 데 메스키타(Bruce Bueno de Mesquita)는 전쟁수행에서 오는 기대이익이 현상유지보다 더 크면 전쟁을 수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행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전쟁의 기대효용을 다음 식으로 계산했다.

전쟁수행 기대효용(EUw)=성공 가능성(P)×성공의 효용(Us)+실패 가능성(1-P)×실패의 효용(Uf)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 군사개입 결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상황에 대한 미국의 만족도는 지극히 낮았다. 미국은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도미노처럼 다른 아시아지역도 공산화할까봐 우려했고, 베트남에서 공산세력을 봉쇄할 필요성을 느꼈다. 다만 미국에게 인도차이나 지역의 가치는 중남미나 유럽보다 작았기 때문에 베트남전 승리의 효용(Us)이 매우 큰 것은 아니었다.

대신 미국은 베트남전쟁 성공 가능성(P)을 매우 높게 인식했다. 중국과 소련이 북베트남을 지원한다고 해도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적어도 지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도덕이나 당위의 측면에서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처음부터 줄곧 비판 받았지만, 초강대국 미국이 북베트남에게 패전할 것으로 내다본 분석은 개입 초기 당시엔 거의 없었다. 실제로도 베트남전쟁 동안 미군측 사망자는 약 5만명으로, 백만명을 상회하는 공산측의 사망자보다 훨씬 적었다. 미국은 스스로 높게 인식한 성공 가능성(P)으로 인해 전쟁수행에서 올 기대효용(EUw)이 높았고 따라서 전쟁을 하게 되었다.

북베트남의 기대효용도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북베트남은 자국이 승리할 가능성(P)을 미국만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성공의 효용(Us)은 미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게 인식했다. 다수의 희생을 무릅쓰고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지고의 가치가 공유되었다. 전쟁승리에서 올 효용(Us)의 값이 워낙 컸기 때문에 비록 성공 가능성(P)이 높지 않았더라도 전쟁수행에서 기대되는 효용(EUw)이 전쟁을 수행하지 않을 때보다 컸을 것이다. 북베트남은 미국이 참전하더라도 전쟁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이처럼 군사력에서 압도적으로 열세였던 북베트남이 미국과 치열하게 싸운 것은 기댓값 계산에 기초한 전략적 선택이었고, 이는 인도차이나를 뛰어넘어 국제질서를 바꾼 전략이기도 했다. 데탕트도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

북베트남과의 평화협정에 따라 1973년 3월 존 매케인(후에 미국 상원의원 및 대통령후보, 정면 바라본 사람 중 맨 앞)을 포함한 미군포로들이 미군측에 인계되고 있다.

이제 73년 평화협정 체결과 미군철수 선택을 살펴보자. 미국은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덜 잃기 위해 철군했다고 볼 수 있다. 레둑토(1911~1990)가 공동수상을 거부한 키신저의 노벨평화상이 미국의 유일한 전리품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73년 1~3월 미국의 여러 정책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인도차이나 안정에 기여했다고 포장하면서 베트남에서 발을 빼는 수순에 불과했다.

지는 데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론, 철군할 거면 더 일찍 했어야 했다. 하지만 본전 생각에 철군을 주저했다. 미국은 이미 수많은 인명과 재원을 투입했기 때문에 그냥 철군하기에는 아쉬움이 매우 컸다. 확대와 철수 가운데 성공 가능성(P)을 더 높여주는 확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베트남 주둔 군사력을 증강했어도 실제 성공 가능성(P)은 증대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 한발 더 개입하면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

비즈니스에서 이미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추가로 투자할 때가 많다. 기존 투자금의 회생 가능성이 높지 않을 때는 기존 투자금을 잊어버리는 게 더 큰 돈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일단 선택한 후에는 선택 이전의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기간에 걸쳐 매번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도록 선택됐다고 가정하고 전략을 구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73년 철군은 더 이른 철군보다는 못한 전략이었지만 조기 철군 옵션이 이미 지나가버린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여러 대안 가운데서는 가장 나은 전략이었다.

68년 초 공산측의 대공세 이후 미국은 자국이 베트남에서 이길 가능성(P)이 낮다고 인지하게 되었다. 동시에 중-소 분쟁 등으로 봉쇄의 필요성이 대폭 감소되었고 부당한 전쟁이라는 미국 내 반전 여론이 득세하면서 성공에서 오는 미국의 효용(Us)도 낮게 인식됐다. 따라서 전쟁수행에서 기대되는 효용(EUw) 또한 감소했고 철군에 이르게 된 것이다.

1 미켈란젤로 카라바조가 17세기 초에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카라바조는 자신의 젊은 모습을 다윗의 얼굴에, 자신의 나이든 모습을 골리앗에 대입하여 그렸다고 전해진다. 2 거대한 골리앗에 돌팔매질을 하는 다윗. 오스마르 신들러의 1888년 작.

골리앗은 다윗과의 싸움 피했어야
미국 철군의 전략적 효과는 추후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이다. 다른 개발도상국처럼 남베트남정부도 부패와 쿠데타로 정권이 불안정했다. 미국으로서는 분단된 남베트남 대신 통일된 베트남을 관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76년 통일한 베트남은 77~79년 캄보디아와, 79년 중국과 각각 전쟁을 치렀다. 85년 부분적인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했다. 이후 92년 한국과, 95년에는 미국과 각각 국교를 수립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후 베트남과 우호관계를 수립하는 데 걸린 시간은 미국이 베트남에 적대적으로 개입했던 기간보다 더 짧았다.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인 세력균형론에서는 이길 가능성과 질 가능성을 매우 중시한다. ‘손자병법’ 지형편에서도 “싸워서 반드시 이기면 주군이 싸우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싸울 수 있고, 싸워 이기지 못하면 주군이 반드시 싸우라고 해도 싸우지 않을 수 있다(戰道必勝 主曰無戰 必戰可也 戰道不勝 主曰必戰 無戰可也)”고 언급하고 있다.

성공 가능성에 따라 행동을 선택하라는 이런 고전적 경구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달걀로 바위를 깨려고 시도하는 것, 그리고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이 최선의 전략일 때도 있다. 왜소한 다윗은 무모하게 보이더라도 거구의 골리앗과 싸웠다. 실패하더라도 더 나빠질 게 없다든지 혹은 성공할 때 너무 좋아진다든지 하면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아도 도전할 수 있다.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자가 센 자와의 싸움으로 자기 위상을 높일 수 있을 때 특히 그렇다.

반대로 골리앗은 다윗을 피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이겨봤자 더 나아질 게 별로 없거나 실패하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아무리 높아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성공 가능성(P)과 실패 가능성(1-P)이 얼마나 크고 작으며, 성공(Us)과 실패(Uf)가 얼마나 좋고 나쁜지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 이러한 기댓값 계산은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기초자료다.

사람들은 전략이 이기기 위한 것이지 지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쉽게 이기는 것뿐 아니라 잘 지는 것 즉 덜 지는 것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일보후퇴 이보전진’처럼 길게 보고 현재에는 지는(양보하는) 것, 그리고 지는 게 확실하다면 적게 지는 것이 그런 예다. 적자생존은 적게 진 자가 살아남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윗은 기습적인 돌팔매질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이로써 다윗의 선택이 옳았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선택은 결과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이겼기 때문에 무조건 옳은 선택이고 졌기 때문에 무조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윗의 돌팔매질이 성공할 거라는 보장은 애초에 없었다. 불확실성이 수반되는 선택에는 운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엔 결과가 좋았지만 전략은 나쁘게 평가될 수 있고, 또 결과가 나빴더라도 좋은 전략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연구소 National Fellow,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저서로는 『동서양의 신뢰』 『DMZ 평화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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