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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정치개혁 위한 최우선 과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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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다음달 1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선결 과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공천방식의 법제화(오픈 프라이머리)가 제시됐다.

23~27일 중앙SUNDAY가 정개특위 위원들을 대상으로 개혁 현안에 대한 의견(총 16명 응답)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의 선거법 개정 결정 이후 구체적인 정치 개혁방안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정개특위는 여야 동수 국회의원 20명으로 구성됐다.

우선 정치 개혁 현안 중 가장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가장 많은 응답자(10명)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꼽았고, 다음으로 ‘공천방식 법제화’(8명)를 들었다. 이어 ‘국회의원 정수 조정’ ‘석패율제 도입’ ‘지역구-비례대표 의석비율 조정’ ‘선거 직전 후보자 중도사퇴 제한’ ‘지구당 부활’ 등의 순으로 중요도를 매겼다.

선거구 획정을 다룰 기구를 어디에 둬야 할지에 대해선 대부분의 위원(15명)이 ‘중앙선관위와 같은 국회 밖의 기구에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한 명만이 ‘국회의장 직속’을 주장했다. 특위 야당 간사인 김태년(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선거구 획정이야말로 개혁의 출발점”이라며 “결정 과정에 이해관계자가 관여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사안에선 여야 간 의견이 갈렸다. 여당 소속 응답자 전원이 바람직한 공천제도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꼽은 반면 대부분의 야당 위원은 반대했다. 익명을 원한 한 특위 위원은 “보스의 공천권 통제가 상대적으로 강한 여당 의원들이 하향식 공천에 문제의식을 많이 느낀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선 정당의 이념 정체성을 중시하는 의원이 상대적으로 많아 전면적인 오픈 프라이머리가 ‘정당 차별성을 훼손시킨다’는 우려들이 나왔다.

현재 300명인 의원 정수에 대해선 야당 위원은 한 명을 빼곤 모두 ‘늘려야 한다’고 답했고, 여당 위원들은 반대로 한 명을 제외하곤 ‘현재 의석 유지’를 주장했다. 한 여당 위원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 보면 안 될 게 뻔한데 괜한 힘을 쓸 필요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에는 찬성 3명·반대 4명, 또 ‘지구당 부활’에 대해선 찬성 4명·반대 3명으로 팽팽히 엇갈렸다. 중·대선거구제와 관련, “소선거구제의 승자 독식을 없애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일본 자민당처럼 일당 장기집권을 불러올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지구당 부활에 대해선 “주민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위해 찬성한다”는 주장과 함께 “불법 정치자금 등의 문제가 재발할 위험이 있다”는 의견이 맞섰다.

지역구·비례대표 동시 출마를 허용해 지역구에서 떨어지더라도 득표율이 높은 후보자는 비례대표로 구제해 당선시키는 ‘석패율제 도입’에 대해 7명이 찬성했지만 한 위원은 “국민이 떨어뜨린 후보를 다시 붙여 주는 제도”라며 반대했다. 이병석(새누리당) 특위 위원장은 “위원들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는 데다 당론으로 결정될 사안도 있을 것”이라며 “각계 전문가와 다른 의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8월 말까지 최종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구상과 국민의 의식엔 온도차가 확인된다.

새정치연합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이달 5~6일 정치 개혁방안 마련에 참조하기 위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보자 사퇴 제한(77.8%)과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72.6%)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지구당 부활엔 절반 이상(51.1%)이 반대했다. 국회의원 정수에 대해서도 67.9%가 ‘현재보다 줄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5.5%뿐이었다. 정당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방안에는 찬성, 정당의 활동 폭을 넓히자는 데엔 반대 여론이 많은 것이다.

특히 응답자의 30.1%는 현재 거론 중인 각종 정치 개혁 현안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잘 안다’는 응답은 15.8%에 불과했다. 잘 안다는 사람일수록 권역별 비례제와 지구당 부활 등 정당 정치를 활성화하는 제도 도입에 배 이상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수록 도입에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한상익 연구위원은 “정치 불신이 깊어지면서 국회·정당의 활성화나 ‘잘 모르는 변화’ 자체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치 개혁 추진 과정에서 여론 수렴과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 필요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임성학(서울시립대 교수) 한국정당학회장은 “국회는 졸속으로 개혁을 추진해선 안 되며 국민도 여유를 갖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정치 불신이 초래한 정치 위축을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6일 열린 한국정당학회 학술대회에선 “선거라는 국민 주권의 원리로 해결해야 할 정치 사안들을 사법부(헌법재판소 등)에 떠넘기는 정치 결손현상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말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강명세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현대 자유민주 정부는 의회라는 ‘국민에 의한’ 정부와 사법부ㆍ선관위ㆍ중앙은행 등 ‘국민을 위한’ 정부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헌재의 결정으로 한국 정치가 이 균형이 깨진 ‘민주주의의 결핍(democratic deficit)’ 상태임을 보여 줬다”고 했다. 그는 또 “헌재와 같은 비선출직 제도가 국민 주권을 압도하게 된 것은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에다 정당이 차별성 없는 정책만 내놓는 ‘카르텔’로 변질된 결과”라며 “개혁은 국민 주권 원리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전국을 수도권ㆍ영남ㆍ호남 등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인구비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 지지 정당에 대한 투표에서 나온 득표율에 따라 각 당의 권역별 전체 의석수가 정해지고, 여기서 지역구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비례대표 의원 수가 된다.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제. 정당이 대통령·국회의원 후보 등을 내세울 때 당원 대신 일반 국민의 투표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충형·천권필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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