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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 <끝> 에밀레종 설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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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홍주연

신라 혜공왕 7년(771년)에 만들어진 성덕대왕신종은 에밀레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이를 넣어 만든 종을 치니 “에밀레라~ 에미때문일레라~”하고 엄마를 원망하는 소리가 났다는 전설 때문이다. 이 전설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종을 만들 쇠붙이를 시주받으러 온 스님에게 “우리 집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이 아이라도 가져가라”고 엄마가 말실수를 했다거나, 종 만드는 우두머리 장인인 오빠를 위해 엄마가 스스로 아이를 바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서워라, 아이를 산 채로 쇳물이 끓는 도가니에 넣다니! 어릴 적 나는 에밀레종 설화가 너무 무서웠다. 과연 에밀레종은 아이를 넣어 만들었을까?

안심하시라, 에밀레종에는 아이를 넣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아이를 넣을 만한 용광로도 없었다. 출토된 도가니 유물을 보면 대부분 높이가 20㎝도 안된다. 게다가 에밀레종을 만들기 250여 년 전인 지증왕 때 순장(권력자의 무덤에 산 사람을 같이 묻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신라는 인명을 중시했다. 그런데 종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는 이야기는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도 많다.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의 전설을 수집한 책에는 보신각종 전설로 나온다. 칼이나 다른 물건으로 넓혀 보면 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지역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있는 걸까?

고대인들은 자연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인간에 빗대어 생각했다. 광석도 어머니 자궁 안에서 자라는 태아처럼 대지의 모태 안에서 성장한다고 믿었다. 광부가 광석을 캐는 것은 산달을 채우지 않아 미성숙한 광석을 억지로 끄집어 낸 셈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미성숙한 태아인 광석을 새로운 자궁인 도가니에 넣어 성공적으로 물건을 만들기 위해 다른 방법을 써서 광물의 성장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주술과 의례가 발달했다. 정상적으로 자란 태아, 어린아이의 성장 에너지를 사용하여 미성숙한 광석으로 만든 물건의 완성도를 높이는 희생의례가 상징으로 남았다.

알고보니 덜 무서운가? 안심하기는 이르다. 에밀레종 설화는 서양 선교사들에 이어 일제 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채집·기록된다. 1930년대, 일제는 전쟁에 쓸 물자를 강탈하고 천황을 위해 희생하라며 사람들을 군대와 정신대로 잡아 간다. 왕을 위한 사업에 자신의 아이까지 바치는 에밀레종 설화는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령을 뒷받침하는데 이용됐다. 말을 경망스럽게 하는 여성의 본성을 강조하는 예로 일부 여성 혐오자들이 사용하기도 한다. 어른이 된 나는 원래 전설보다 전설이 이용되는 각각의 현실이 더 무섭다.

이야기와 역사의 숨은 배경에 대한 글을 싣는 이 코너에서 나는 늘 현재까지 이어지는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생각 없이 지나칠 경우,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이야기와 역사를 해석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겐 이야기와 역사를, 아니 세상을 바르게 해석할 권리가 있다. 여러분이 보고 듣고 읽는 모든 것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시길. 때로는 끓는 쇳물이 가득 찬 용광로 안에서 아파할 일이 있을지라도 스스로 이겨내고 성장하시길. 이번 에밀레종 이야기는 마지막 회에 작별 인사로 쓰려고 아껴둔 이야기였다. 그동안 ‘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을 사랑해 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행복한 2년이었다.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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