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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심전환대출만으론 가계부채 안심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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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안심전환대출의 인기몰이가 뜨겁다. 출시 첫날인 24일 하루에만 한 달 한도 5조원을 거의 소진했다. 대기 고객이 100명 넘게 몰리면서 일부 은행 지점은 저녁 8시까지 관련 업무를 봤고, 그래도 안 돼 대기표를 나눠주고 고객을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나흘째 열풍이 이어지면서 어제 연간 한도 20조원이 모두 동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 당국은 “한도가 소진되면 당분간 추가 판매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심전환대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우리 가계가 그간 가계부채에 대해 얼마나 큰 부담을 갖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의 한 해 이자만 최소 40조원이다. 금리가 1%만 올라도 가계의 이자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미국이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리겠다고 발표한 만큼 때가 되면 한국도 덩달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 가계부채의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안심전환대출은 이런 가계 빚 연착륙 대책의 하나다. 국내 주택담보대출의 대부분은 변동금리에 이자만 내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원금을 갚는 거치식이다. 변동금리로 집을 맡기고 돈을 빌리면 금리가 오를 때 늘어난 빚을 갚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변동금리·거치식 대출이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안심전환대출은 이를 고정금리로 바꾸고 원리금을 같이 갚아 나가도록 한 것이다. 금리가 오르더라도 가계 부담이 더 늘지 않는 구조다. 조건도 파격적이다. 금리가 연 2.6%대로 시중금리보다 약 1%포인트 낮다. 대출을 바꿔 탈 때 물어야 하는 중도상환수수료도 면제했다. 누가 봐도 안 갈아타면 손해다. 오랜만에 금융 당국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다.

 안심전환대출은 그러나 가계부채의 근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연간 한도 20조원은 가계부채 총액의 2%에도 못 미친다. 가계부채 구조를 바꾸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그렇다고 무작정 한도를 늘릴 수도 없다. 20조원의 안심전환대출을 위해 한국은행이 2000억원을 출자했고 주택금융공사가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했다. 추가 판매를 위해서는 그만큼 출자금과 MBS 발행 한도를 늘려줘야 한다. 재원 조달이 쉽지 않다. 팔수록 역마진이 늘어나는 구조라 은행들도 난색이다.

 기존 고정금리 대출자와 제2금융권 대출자를 제외한 것도 문제다.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면 형평성 시비를 부를 수 있다. 정부는 3년 전부터 고정금리 대출을 장려, 유도했다. 당시 정부 시책에 호응한 대출자들은 그간 금리가 크게 낮아지는 바람에 되레 손해를 보고 있다. “정부 말 잘 들었다가 역차별받는다”는 소리가 나와서야 되겠나.

 제2금융권 대출자를 위한 대책도 시급히 나와야 한다. 가계부채 건전화를 추진하면서 부실 우려가 큰 제2금융권 대출을 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빚내서 부동산 띄우기 식의 경기 대책도 재고해봐야 한다. 빚 권하는 부동산 정책이야말로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이 아닌가.